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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읽기

[시]그날 저녁 / 황동규

작성자강인한|작성시간23.01.06|조회수647 목록 댓글 0

그날 저녁

        

      황동규

    

  

 

  세상 뜰 때

  아내에게 오래 같이 살아줘 고맙다 하고

  (말 대신 손 한번 꽉 잡아주고)

  가구들과는 눈으로 작별, 외톨이가 되어

  삶의 마지막 토막을 보낸 사당3동 골목들을

  한 번 더 둘러보고 가리.

  가만, 근자에 아파트와 빌라들 가득 들어서

  둘러볼 골목 별로 남지 않았군.

  살던 아파트 지척, 구두 수선 퀀셋 앞 콘크리트 바닥에

  산나물 고추 생밤 내놓고 무작정 앉아 있는 할머니한테서

  작은 밤 한 봉지 사 들고

  끝물 나뭇잎들 날리는 서달산에 오르리.

  낮비 잠시 뿌렸는지 하늘과 숲이 밝다.

  하직 인사 없이 헤어진 다람쥐가 나를 알아볼까?

  약수터에 전처럼 비늘구름 환하게 떠 있을까?

  그런 호사스런 생각은 삼가기로 하자.

  운 좋게 귀여운 다람쥐를 만나 밤 몇 톨 꺼내놓고

  몇 발짝 걸어가다 되돌아와 밤 다 내려놓고

  길에 굴러들어온 돌멩이는

  슬쩍 걷어차 길섶으로 되돌려 보내고

  서달산 능선 길을 아끼듯 걸으리.

  벤치 하나, 둘이 서로 얽히듯 서 있는 나무, 약수터가 지나간다.

  하늘에 샛별이 돋는다.

  이 별 뜨면 가던 걸음 멈추고

  무언가 맹세하곤 했지.

  참 맹세든 헛맹세든

  지난 맹세는 다 그립다.

  내일 저녁에도 이 별은 뜨리라.

  걸으리, 가다 서다 하는 내 걸음 참고 함께 걷다

  길이 슬그머니 바닥을 지울 때까지.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23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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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규 / 1938년 서울 출생. 1958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풍장』 『사는 기쁨』 『연옥의 봄』 『오늘 하루만이라도』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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