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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 설산에 물고기들의 무덤이 있다 / 정연희

작성자강인한|작성시간23.02.11|조회수449 목록 댓글 0

그 설산에 물고기들의 무덤이 있다 

 

   정연희

 

 

 

눈 내리는 설산에서 보았다

물고기처럼 파닥거리는 여름 잎의 기억과

뒤척이는 숲의 파랑波浪

파도와 파도 엮어 물길을 내던 푸른 지느러미

일각고래 청상아리 대서양 녹새치들이 파고 들어앉은 봉분들 하얗다

 

산티아고*가 6미터 녹새치를 뱃전에 묶어 조류에 맡겼다

기쁨도 잠시

늙은 어부가 겨눈 작살이 아가미에 검붉은 길을 냈다

리본체조 붉은 비단 끈처럼 휘어지는 피의 길

세모 지느러미 갈라노Galanos를 유혹했다

작두날처럼 번뜩이는 송곳니 그의 심장이 베인 듯 움찔거렸다

 

뱃가죽에 꽂은 잇자국에서 자색 거품이 일고

날뛰는 파도에 허옇게 빛나는 뼈 돛대처럼 수직으로 일어섰다

 

물기둥에 휩쓸려 만의 안쪽에 갇힌 물고기들

버둥거리는 녹색치들 긴 해안선이 안고 있다

기억의 저편에서 소리 없이 세설細雪이 쌓이고

나무도 대서양 녹새치도 길게 누운 채 꿈 안에 갇혔다

영장류와 나무와 물고기가 이마 맞댄 한 테두리 화석 표본처럼

살붙이들 껴안고 단잠 들었다

 

 

*헤밍웨이 소설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

 

 

                 —계간 『미네르바』 2022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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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희 / 충남 홍성 출생. 성신여대 국문과 졸업. 200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호랑거미 역사책』 『불의 정원』 『내 발등에 쏟아지는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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