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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여름의 기원 / 문성해

작성자강인한|작성시간08.06.25|조회수380 목록 댓글 0
여름의 기원

문성해





누가 이 저녁에 비눗방울을 불 때처럼 잠자리 떼를 날려보내고 있나
그의 센 머리카락 사이로부터 초록의 바람이 새어나오고
그의 가장 깊은 호흡에서부터 수채물감처럼
연보라 연하늘 연분홍 이런 빛깔들이 흘러나오고
그러나 아무도 그 흘러나온 데를 되짚어갈 수 없게
발꿈치 뒤가 연하게 허물어져 가는 누가 있어
태양의 기력이 쇠한 이 저녁에
비눗방울을 불 때처럼 잠자리 떼를 날려보내고 있나
끝이 없는 끈이 날리듯 연한 바람이 불고
그 바람을 계단처럼 밟고 서서 누가 우수수 목숨들을 흩어놓고 있나
무겁고 찰진 이 땅으로
잠자리 하루살이 애기똥풀 같은 거품 같고 물 풍선 같은 것들을 흘려보내고 있나
데리고 와서는 뒤는 돌봐주지도 않고 그냥 떠있다 사라지게만 하는가
몸엣것들을 다 써보지도 못하고 오로지 어깨근육만으로 떠있는 그들에게
누가 하늘이라고 부르고 있는가
목숨이 목숨 같지 않은 이들이 가장 가볍고 명랑한 무게로 떠다니는 이 저녁에
나도 하늘거리는 얼굴을 들고 누가 이 허공에 떠다니게 하는가
저 앞에 흔들리며 오는 목숨들을 향해 미소짓게 하는가
비눗방울을 불 때처럼 누가 내 목에 숨을 불어넣고 있는가
누가 내 목구멍 속으로 묽은 잠자리 떼를 흘려보내고 있는가
엷은 장이 끓는 이 저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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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해 / 1963년 경북 문경 출생. 199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200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 시집 『자라』『아주 친근한 소용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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