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말들의 시간
이설야
하늘 위로 유령해파리들이 날아다니는 밤이 오고 있어
여자가 숨을 내쉬자 입속에서 긴 호스가 나왔다
나는 호스를 잡고
그 끝을 틀어막고 있었다
등 뒤에서 그림자들도 호스를 같이 붙잡고 있었다
여자가 뱉은 검은 말들이
내 옷에 튀었다
털어도 털어지지 않는 말들
내 살 속으로 파고들었다
여자의 말들이 유령해파리처럼 흐느적거리며
내 귓속을 맴돌았다
유령해파리들이 하늘을 버리고 바다로 서둘러 돌아가고 있어
내 입속에서도 긴 호스가 나왔다
걷잡을 수 없는 말들
여자의 옷에 내 검은 말들이 튀었다
여자와 나는
얼굴에 재를 묻히고 각자 구덩이를 팠다
검은 말들이 묻은 옷들을 재빨리 파묻었다
돌처럼 차갑게 식은 심장들
내 등 뒤에서 그림자들이
서로의 벼랑을 물어뜯고 있었다
―사이버문학광장 《문장 웹진》 2024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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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설야 / 1968년 인천 출생. 2011년 《내일을 여는 작가》로 등단. 시집 『우리는 좀더 어두워지기로 했네』 『굴 소년들』(영문판 Cave Boys) 『내 얼굴이 도착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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