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을 훔치는 사람
장안아
희귀난치병 어린이를 위한 모금 천막 앞에서
하나의 문장을 적기 위해 서 있었습니다.
괜찮으니 그만 가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걷는 법이 생각나지 않아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지구 반대편 어느 나라에선 게으른 사람에게
낮을 훔치는 사람이라 부릅니다.
출근한 애인의 자취방에서
벽에 핀 곰팡이를 바라보며 보내던 날이 있었습니다.
곰팡이를 이으면 어떤 문장이 될 듯도 했는데
한 문장을 완성하기도 전에 애인은 퇴근했습니다.
공중화장실 앞에서
통기타를 들고 혼자 공연하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공중화장실에 들르는 사람들만 한 번씩 보았습니다.
나는 멀리서 그를 지켜보았습니다.
그가 공연을 마치고 자리를 뜬 곳에서
부러진 피크를 주워 지갑 속에 넣었습니다.
봉쇄수도원에 눈보라가 치던 날
수녀원의 계단에는 검은 새가
죽어있었다고 합니다.
나는 그 새가 부러워
방안을 밤새 걸었습니다.
아무리 걸어도 회사의 비리를 고발하겠다는 친구에게
어떤 문장을 적어 보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너의 아이에게 네가 어떤 사람인지 말하겠다 적고
아침에 잠들었습니다.
일어나 문장을 지웠습니다.
지하철을 한 번 갈아타고 버스를 두 번 갈아타면
경찰이 되고 싶다는 아이를 볼 수 있습니다.
과자만 잔뜩 샀습니다.
―계간 《포지션》 2024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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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아 / 2023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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