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색채가 담긴 오후 다섯 시 (외 1편) 김택희 막연했지 조금 추울 거라 생각했어 종일 비라도 내려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됐지 붉은 제라늄 화분에서 물방울이 똑! 보이지 않던 질문을 안고 걸어온 시간 모퉁이에는 익은 담쟁이덩굴과 햇빛이 한가득 그늘조차 노랗게 물들지 노을은 꽃송이처럼 나뭇가지에 피어 있어 지나는 바람이 슬그머니 옷자락을 잡지만 시간을 되돌려준대도 고개를 흔들지 해를 건너는 구름 바라보다가 발걸음을 옮겨 물길 따라 작은 풀들이 모여들고 주름치마가 오후를 가지런히 감싸안지 어처구니없던 일이 떠올라 피식 웃어 보기도 해 어지럼증을 데려온 햇살이 모퉁이를 돌고 있어 가까워진 노을이 왼뺨에 닿으면 오르던 길을 돌아 천천히 내려오지 남아 있는 블루를 따라 골목을 좀 더 돌아 보기로 해 소담한 국수 그릇에 후루룩, 하루가 말린다 타인의 연못 물옥잠은 문을 열었다가 곧 닫아걸곤 했다 전생에 물을 탐해서일까 바라다만 볼 뿐 발 들여놓을 수 없다 에티오피아 예가체프라며 건네주던 부드러운 향기에서 불면의 색 지났다 빗소리 거세졌다 빗줄기는 심장에서 자랐다 안쪽에 들고 싶은데 경계를 그으며 연못은 물방울을 튕긴다 밀쳐 내는 날카로운 톤이 귓가에서 낱낱이 빗발쳤다 나를 돌려세운 잠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잠들고 싶은 물가 캄캄한 빗줄기가 독설처럼 쏟아졌다 —시집 『눈 오는 날의 염소』 2026.5 -------------------- 김택희 / 1964년 충남 서산 출생. 2009년 《유심》신인 추천으로 등단. 시집 『바람의 눈썹』눈 오는 날의 염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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