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선이 왔어요 강은진 이 동네에는 아직도 생선 트럭이 옵니다 갈치나 오징어를 팔아요 아마도 목요일 어쩌면 수요일 생선이 왔어요, 생선이, 우렁차게 확성기를 울리며 생선이 왔다고요 우리에게 생선이 가차없이 이름처럼 머나먼 빅토리아 케이크 같은 걸 녹여 먹고 있는 오후에도 창틈으로 방충망 사이로 암막 커튼을 들추고 막무가내로 할 말이 있다는 듯 자꾸 생선이 옵니다 일방적으로 온몸을 훑고 가는 이 비린내 나는 다정함 오래 전 그는 내 음식을 먹고 싶다며 자취방에 찾아왔어요 하필 온갖 비린 것들을 넣어서 해물탕을 끓여 줬죠 그는 연신 맛있다고 했지만 반도 먹지 않았어요 몇 번씩 비누로 씻고 맥주로 씻어요 손에서 비린내가 없어지지 않아서 나는 내내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어요 우리는 말없이 눈을 감고 노래를 몇 곡 들은 후 헤어졌지요 비린내 때문이었어요 그랬어야만 해요 내 사랑은 비린 해물탕 같은 거였는데 이름도 멀고 마음도 머나먼 빅토리아 케이크가 되려고 수식어가 설탕처럼 가득 뿌려진 문장들 속에 얼굴을 가둬 놓고 라즈베리 오렌지 바닐라 버터밀크 실은 갈치 오징어 고등어 사라진다는 걸 믿지 않으면서 마치 사라질 수 있을 것처럼 오늘은 목요일, 아니 어쩌면 수요일 지도가 펼쳐지고 길바닥에 주소가 적힙니다 기어코 생선이 옵니다 —사이버 문학광장 《문장 웹진》 2026년 6월호 --------------------- 강은진 / 1973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국문학과 졸업, 고려대 대학원 국문학과에서 공부함. 2011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달콤중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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