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
이봉환
길은 흔들리지 않고 혼자 무겁다.
산길이 거센 바람에도 저리 묵직한 것은
그동안 수많은 발길들이 다녀갔기 때문.
자살하려고 산에 들어섰던 어느 실연자는
일등바위까지 올랐다가 이내 웃으며 내려갔다.
그건 길이 울음을 대신 삼켜 주었기 때문.
언젠가는 실직자가 낮술에 취해 꺼윽꺼윽
슬픈 얼굴을 길 다 젖도록 비벼대기도 하였다.
신발 끈 질끈 동여맨 산길의
궁리와 생각들은 저토록 깊고 우직하다.
태풍이 온다는 예보에 바위가 잔뜩 움츠리고
은사시나무 잎이 사방팔방으로 몸서리친다.
그런데도 길은 덤덤하고, 천천하고, 묵묵하다.
그건 수많은 영혼들이 그동안 깃들었기 때문.
단단히 다져진 길의 근육이 정신처럼 빛난다.
― 웹진 《문장》2008년 11월호
----------------
이봉환 / 1961년 전남 해남 출생. 1988년 《녹두꽃》1집에 「해창만 물바다」를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시집 『조선의 아이들은 푸르다』『해창만 물바다』『내 안에 쓰러진 억새꽃 하나』.
이봉환
길은 흔들리지 않고 혼자 무겁다.
산길이 거센 바람에도 저리 묵직한 것은
그동안 수많은 발길들이 다녀갔기 때문.
자살하려고 산에 들어섰던 어느 실연자는
일등바위까지 올랐다가 이내 웃으며 내려갔다.
그건 길이 울음을 대신 삼켜 주었기 때문.
언젠가는 실직자가 낮술에 취해 꺼윽꺼윽
슬픈 얼굴을 길 다 젖도록 비벼대기도 하였다.
신발 끈 질끈 동여맨 산길의
궁리와 생각들은 저토록 깊고 우직하다.
태풍이 온다는 예보에 바위가 잔뜩 움츠리고
은사시나무 잎이 사방팔방으로 몸서리친다.
그런데도 길은 덤덤하고, 천천하고, 묵묵하다.
그건 수많은 영혼들이 그동안 깃들었기 때문.
단단히 다져진 길의 근육이 정신처럼 빛난다.
― 웹진 《문장》2008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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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환 / 1961년 전남 해남 출생. 1988년 《녹두꽃》1집에 「해창만 물바다」를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시집 『조선의 아이들은 푸르다』『해창만 물바다』『내 안에 쓰러진 억새꽃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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