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서쪽
김선재
이곳에 다다른 햇살은 지상에서 가장 가파른 절벽이다
본 적 없는 태양의 뒤편 그 저녁이 우리의 주기를 이루어
지구가 내내 어깨를 기대 저물어 갈 때
국경의 여인숙은 불을 켜고
하루를 떠내려 온 우리들 행장을 풀고 태양의 적멸을 보네 이곳은 고대사원에 뚫린 비밀의 구멍 그리하여 나란히 선 우리들 젖은 옷깃을 말리고 소리가 된 적 없는 말들이 흘러가는 동안 멈추어 서서 귀 기울이는 이는 없었네 육지에 다다르지 못한 파도들이 밀려와 지평선을 만들었으나 태양은 수시로 몸을 바꿔 수평선을 몰아가고 나는 부신 눈을 자주 비비네
절벽이 된 햇살, 파편이 되어 능선을 베니 온몸에 차마 꽃이 되지 못한 피멍들 피고 나란히 선 우리들 끝내 울지도 못하고
바람이 버리고 간 말과 눈물이 몰락하는 서쪽에 앉아
뱉을 수도 삼킬 수도 없는 오랜 유배지의 벽에 기대니
달이 걸어와 이마를 어루만지네
다시 강을 건너 이 변방까지 찾아오는 태양의 동쪽
국경의 옛 여인숙이 불을 끄는 시간
―《문학과사회》2007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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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재 / 1971년 서울 출생. 2006년 《실천문학》신인상 소설 당선. 2007년 《현대문학》시 추천 당선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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