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타셀(Hotel Tassel)의 돼지들 (외 2편)
오 은
사람들의 음모는 언제나 아르누보 식이었지요
이 말은 우리가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는 겁니다
젊은 돼지들은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겁이 많고 눈이 커다란 데다 제법 순종적이었거든요
꾸불거리며 대가리 쳐들 기회만 슬슬 엿보는 거지요
저렇게 끼리끼리 모여 있는 걸 보면 몰라요?
젊은 돼지들은 침대 위를 뒹구는 마피아와 갱을 상상했습니다
소름이 돋았지요, 요즘엔 유기농 비료를 먹고 있는데 말입니다
늙은 돼지들은 구석에 누워 심하게 낄낄거립니다
약고 퍅하고 야한 농담을 즐기죠
젊은 돼지들의 토실토실 오른 살을 부러워했고
항상 네 다리를 벌리고 잠잤습니다
인간의 아이가 태어날 때면 엉덩이로 꼬리를 뭉갠 채 잠들었지요
너무 늙은 나머지 꿀꿀거리지 못하는 돼지들도 있어요
그들은 다만 낄낄거릴 따름이지요
늙는다는 것은 이렇게나 추하고 무서운 일이랍니다
식충이들
밥을 먹는다 습기 먹은 김을 먹고, 인분을 먹고 자란 돼지고기 2인분을 먹고, 고기를 구울 때 나는 탄내도 덤으로 먹는다 풀 먹은 옷을 입고 담배를 뻑뻑 먹으며 출근을 한다 동료들에게 빌어먹을 골탕도 먹고 겁을 먹고 찾아간 부장에게 욕도 한 두어 바가지 얻어먹는다 독서 좀 하려 했더니 책 모서리는 개먹어 있고, 코 먹은 소리로 친구에게 전화하지만 전화는 먹통이고 가슴은 먹먹해진다 지금 이 순간, 공주님들은 이슬을 먹고 부잣집 어린이들은 꿈을 먹고 화투판에서는 똥을 먹는 아주머니들도 있겠지 연탄가스를 먹는 이들, 본드를 먹는 이들, 미역국을 먹는 이들, 아무렇지도 않게 꿀꺼덕 검은돈을 먹는 이들도 있을 테지
퇴근 후, 술을 처먹고 아편 대신 육포도 씹어 먹고 좀먹는 속이 걱정되어 보약도 챙겨 먹는다 왕년에는 식은 죽 먹기로 1등을 먹었었는데, 어떤 일이든 척척 거저먹었었는데, 식욕은 왕성해지는데 먹어도 먹어도 떨어지는 게 없다니! 독하게 마음먹고 회사의 공금을 좀 먹어 볼까? 콩밥도 먹고 나이도 먹고 그러다 운 좋게 한자리 해 먹으면 뇌물도 먹고 쓴소리에는 적당히 가는귀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쯤 되면 직원들을 노예처럼 부려 먹고 배우자의 영혼도 야금야금 갉아먹을 테지
당신은 예외라고 생각하는가?
앉은자리에서 손 하나 꿈쩍 않고
1,397바이트를 소화시킨 무시무시한 당신은
어떤 날들이 있는 시절 3
―속담으로 구성된 어떤 말놀이
어떤 날엔 눈만 감아도 석 자 코가 썩썩 잘려나갔다 무심코 돌다리를 두드렸다가 핑계 없는 무덤에 매장되기도 했다 아니 땐 굴뚝이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매연을 뿜었다 학교에서는 낫을 놓고 ㄴ자라고 가르쳤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었지만, 기는 놈만큼 생존력이 강하지는 않았다 뛰어 봤자 벼룩이었고 날아 봤자 배만 떨어졌다 벼룩의 간과 그림의 떡이 다이어트 식품으로 각광받았다 진주 목걸이를 한 여인들이 누워서 떡을 먹거나 침을 뱉었다 간혹 침이 웃는 얼굴에 떨어지면 당장 전쟁이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 때마다 새우 등이 터졌지만, 등잔 밑이 어두워서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어떤 날엔 다 된 밥에 재를 뿌리고 죽 쑤어 개 주는 게 유망한 직종으로 여겨졌다 개는 대개 게 눈을 감추고 게걸스레 개밥을 먹었다 개밥 속 숨겨진 도토리를 찾으면 서당에 살지 않아도 풍월을 읊을 수 있었다 첫 술에 배불러 지레 똥을 지리는 개도 있었다 약은 인간들이 개똥에 모르는 것을 첨가해 약을 제조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을 수 있어 감초보다 약방에선 인기가 좋았다 어떤 날엔 얌전한 고양이가 스스로 방울을 달고 부뚜막에 오르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밤말을 듣던 쥐가 놀라서 나자빠졌지만, 그 순간에도 뒤로 호박씨를 까는 건 잊지 않았다 종이호랑이가 낱말은 가재가 듣고 반말은 게가 들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선택받지 못한 우물 안 개구리들이 종이호랑이를 맞들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어떤 날엔 다홍치마 때문에 가재가 게를 배신했다는 말이 돌기 시작했다 말 속에 뼈가 있어서 신중하게 발라먹어야만 했다 반말을 하다가 걸리면 어김없이 목구멍에 끌려가 서 말의 구슬을 꿰는 벌을 받았다 벌을 받는 동안만큼은 마른하늘 날벼락에 콩을 볶아 먹었다 친구 따라 강남에 갔지만, 바늘을 훔쳐 담을 넘다가 소도둑이 된 구렁이만 만났다 쥐구멍에는 볕 대신 병이 들었고 고생 끝에 찾아온 건 낙이 아니라 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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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은 / 1982년 전북 정읍 출생.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석사. 2002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 『호텔 타셀의 돼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