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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읽기

[시]절하다 / 김기택

작성자강인한|작성시간09.03.23|조회수375 목록 댓글 0
절하다

김기택



수십 마리의 통닭들이 좌판 위에 납작 엎드려
절하고 있다 털을 남김없이 벗어버린 나체로
절하고 있다 발 없는 다리로 무릎 꿇고 머리 없는 목을 공손하게 숙여
절하고 있다 목과 발을 자르고 털을 뽑은 주인에게
죽음의 값을 흥정하는 손님에게
이미 죽은 죽음을 끓여서 한번 더 죽이려는 손님에게
절하고 있다 포개지고 뒤집어져도 조금도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시장 한복판이 경건해지도록
호객하는 소리 흥정하는 소리조차 청아해지도록
절하고 있다 한 시간이고 열 시간이고 일어날 생각도 없이
절하다가 그대로 굳어져 다시는 펴지지 않도록
절하고 있다 털 뽑히고 목 잘리지마자 수치가 되어버린 몸을 다하여
수치가 온몸에 오톨도톨 돋은 몸을 다하여


―《문학사상》2006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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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택 / 1957년 경기도 안양 출생. 198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꼽추」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 시집 『태아의 잠』『바늘구멍 속의 폭풍』『사무원』『소』『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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