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편지
――물속에서
박연준
1
물속에서 편지를 쓴다
쥐어뜯긴 시간들이 물 위를 떠간다
2
떨어지는 해를 받아먹고 싶어
아니면 슬픔에 축축이 젖은 복숭아 동그란 씨를 삼킬까?
미안해, 실은 방금 전 파란 캡슐을 삼켰어
나는 하늘이 되려나봐
내가 파놓은 네 가슴속 계단이 되려나봐
3
씩씩하게 바람이 지나갔고
엉성한 사랑이 토사물처럼 달라붙었다
거짓말, 씩씩한 건 사랑이 될 수 없다
부화하지 않는 알을 품고 하늘을 본다
밤이 흔들리며 걸어간다
잠들지 말라고 쇄골을 물어뜯는 밤,
그가 내 쇄골을 스윽 빼더니
손가락으로 튕기며 논다
어깨가 주저앉은 채로 그를 따라가며
병신걸음으로 늙는다
자꾸만 내 몸의 이파리가 썩고
나를 옮겨심고 싶은데,
내가 잠긴 흙속에는 뿌리가 없다
4
담요를 몸에 두르고 앉았는데
그의 머리카락 한 올이 담요에 묻어 있다
오래 바라보다 옆에 가만히 내려놓는다
머리카락은 등을 구부정하게 하고 옆으로 누워 있다
이 가느다란 선(線)이
오늘밤 내게 온 슬픔이다
5
하얀 옷을 입은 내가 걸어가고 있다
-------------------
박연준 / 1980년 서울 출생. 2004년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졸업.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시집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물속에서
박연준
1
물속에서 편지를 쓴다
쥐어뜯긴 시간들이 물 위를 떠간다
2
떨어지는 해를 받아먹고 싶어
아니면 슬픔에 축축이 젖은 복숭아 동그란 씨를 삼킬까?
미안해, 실은 방금 전 파란 캡슐을 삼켰어
나는 하늘이 되려나봐
내가 파놓은 네 가슴속 계단이 되려나봐
3
씩씩하게 바람이 지나갔고
엉성한 사랑이 토사물처럼 달라붙었다
거짓말, 씩씩한 건 사랑이 될 수 없다
부화하지 않는 알을 품고 하늘을 본다
밤이 흔들리며 걸어간다
잠들지 말라고 쇄골을 물어뜯는 밤,
그가 내 쇄골을 스윽 빼더니
손가락으로 튕기며 논다
어깨가 주저앉은 채로 그를 따라가며
병신걸음으로 늙는다
자꾸만 내 몸의 이파리가 썩고
나를 옮겨심고 싶은데,
내가 잠긴 흙속에는 뿌리가 없다
4
담요를 몸에 두르고 앉았는데
그의 머리카락 한 올이 담요에 묻어 있다
오래 바라보다 옆에 가만히 내려놓는다
머리카락은 등을 구부정하게 하고 옆으로 누워 있다
이 가느다란 선(線)이
오늘밤 내게 온 슬픔이다
5
하얀 옷을 입은 내가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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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준 / 1980년 서울 출생. 2004년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졸업.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시집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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