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 (외 2편)
김명희
갈치를 손질한다
마지막까지 바다를 끌고 다녔을 꼬리와
수중의 속도를 재단하던 지느러미를 자르다 보니
낚싯바늘이 한쪽 눈알을 통과한 채 단단히 박혀 있다
턱뼈 깊이 잘 빠지지 않는 날카로운 바늘을 더듬는데
사망한 노숙자 소녀의 신원을 찾는 속보가 흘러든다
어느 소녀의 희망도 야행성이었을까, 낚싯배의 현란한
불빛을 따라 위로- 위로- 먹이를 찾다 걸려든 갈치처럼
어느 날, 길가 화단에서 발견된 채 더는 기척이 없다
세상의 불행이나 가출의 행방들은
치명적인 어둠 쪽으로 엎질러지게 마련인지 아침이면,
봉지에 담긴 싸늘한 유품처럼 구겨진 절망 몇 장 들춰질 뿐
소녀의 성장 안쪽에 깊숙이 박힌 바늘을 수습하는 일이란
뒤늦은 후회일 때가 많다
캄캄한 밤, 아직 덜 자란 지느러미를 달고 거리를 배회했을
초경의 꿈이 몸 곳곳에서 멍든 얼룩으로 피어나고
모자이크 된 몇 개의 진술이 상한 물거품처럼 부글거린다
아직 귀가를 완성하지 못한 딸아이의 전화 속 행방을 살피며
쉽게 밀봉되지 않는 비린내를 내다 놓고 돌아서는 오후
번쩍,
잘못 들른 햇살 한 마리 낚싯바늘에 걸려 퍼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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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와 장미
1
배추와 장미의 내면을 유추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세상에 누가,
배추와 장미 그 아름다움의 구조를 유추할 수 있겠는가
유추가 무엇이든가
장미는 우리들 시장기 밖에서 피어나지 않든가
배추가 우리들 눈에서 피어나지 않고
삶의 공복을 채우기 위해서 피어나듯이
유추란 얼마나 무모한 짓인가
2
나는 자연주의자다
그래서 나는, 더 많은 장미를 수확하기 위해 농약을 주지 않는다
배추 몇 다발의 시세에도 늘 눈이 밝은 내 어머니와 아버지
그분들 사이는 언제나 농약처럼 예민하다
나는 오랫동안
좀더 근사한 것들에 유추되기 위하여 삶을 위조해 왔다
그러나 배추가 정원 근처의 외출을 꿈꾸지 않듯
장미 또한 텃밭 근처의 포만을 넘겨다보지 않는다
아침이면 태양은, 하나의 주제로 성장했다가
정원과 텃밭 근처에 다다르면
그 속에 매장된 두 종류의 내력들을 유추하느라 쇠약해지곤 했다
이 세상 누가
배추와 장미 그 아름다움의 내면이 같다고 유추할 수 있겠는가
내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소한 논쟁 사이에서 늘 그랬던 것처럼
배추와 장미, 그 틈새에서 나는 아직 끝도 없이
내면의 성분을 유추하느라 온종일 서성이고 있다
3
세상 어느 배추가 제 내면을 버리고 장미에게로 망명할 것이며
세상 어느 장미가 제 속성을 버리고 김장 속으로 뛰어들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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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곳
몇 개 뭉툭한 위로와 사무용 슬픔들이 첨부된 후,
이름은 곧바로 삭제되었고
동사무소 직원의 손에서 내게 넘어온 서류는 헐렁하다
한 사람 몫의 이승이 지워진 서류를 들고서 2월의 거리로 나선다
음력의 추억들은 겨울바람처럼 흔들리기 시작하고
쉽사리 높낮이가 변하는 그래프처럼 온통 혼란스럽다
아버지는 더 이상,
구름을 몰고 다니거나 위급한 근심들을 안겨주지 못할 것이다
주인을 잃은 슬픔들은
기억 한켠에 그늘 한두 개쯤 더 장만하게 될 것이고 나는 지금
습관처럼 그의 집에 전화를 건다
순간, 날카로운 모서리에 찔리듯 화들짝 깨어나는 기억
아버지는 없다
밤마다 위급함을 이끌고 중환자실을 통과하던 사연들과
눈물을 빌리러 그의 머리맡을 찾곤 했던 내 오랜 습관들을
이제는 내려놓아야 한다
아, 되돌릴 수 없는 먹구름들
오늘 이후 나는, 되돌아올 것들에 대해선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한다
어떤 후회나 쓸쓸함은 모두 빈곳이 되었다
세상의 뒷면이 된 아버지는 깊은 산 속에 심겨졌고
이승의 휴일엔, 챙겨야 할 방문지가 하나 더 늘었다
이제 내 안의 금요일쯤엔 폭설이 세상을 잠글 것이고, 빈곳은 한동안
고체처럼 단단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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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희 / 1968년 경기 양평 출생. 2006년 〈한라일보〉신춘문예 당선. 200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 수혜,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문학상 대상, 2008년《시와시학》신인상. 시집 『빈 곳』(2009. 5, 시학).
김명희
갈치를 손질한다
마지막까지 바다를 끌고 다녔을 꼬리와
수중의 속도를 재단하던 지느러미를 자르다 보니
낚싯바늘이 한쪽 눈알을 통과한 채 단단히 박혀 있다
턱뼈 깊이 잘 빠지지 않는 날카로운 바늘을 더듬는데
사망한 노숙자 소녀의 신원을 찾는 속보가 흘러든다
어느 소녀의 희망도 야행성이었을까, 낚싯배의 현란한
불빛을 따라 위로- 위로- 먹이를 찾다 걸려든 갈치처럼
어느 날, 길가 화단에서 발견된 채 더는 기척이 없다
세상의 불행이나 가출의 행방들은
치명적인 어둠 쪽으로 엎질러지게 마련인지 아침이면,
봉지에 담긴 싸늘한 유품처럼 구겨진 절망 몇 장 들춰질 뿐
소녀의 성장 안쪽에 깊숙이 박힌 바늘을 수습하는 일이란
뒤늦은 후회일 때가 많다
캄캄한 밤, 아직 덜 자란 지느러미를 달고 거리를 배회했을
초경의 꿈이 몸 곳곳에서 멍든 얼룩으로 피어나고
모자이크 된 몇 개의 진술이 상한 물거품처럼 부글거린다
아직 귀가를 완성하지 못한 딸아이의 전화 속 행방을 살피며
쉽게 밀봉되지 않는 비린내를 내다 놓고 돌아서는 오후
번쩍,
잘못 들른 햇살 한 마리 낚싯바늘에 걸려 퍼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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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와 장미
1
배추와 장미의 내면을 유추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세상에 누가,
배추와 장미 그 아름다움의 구조를 유추할 수 있겠는가
유추가 무엇이든가
장미는 우리들 시장기 밖에서 피어나지 않든가
배추가 우리들 눈에서 피어나지 않고
삶의 공복을 채우기 위해서 피어나듯이
유추란 얼마나 무모한 짓인가
2
나는 자연주의자다
그래서 나는, 더 많은 장미를 수확하기 위해 농약을 주지 않는다
배추 몇 다발의 시세에도 늘 눈이 밝은 내 어머니와 아버지
그분들 사이는 언제나 농약처럼 예민하다
나는 오랫동안
좀더 근사한 것들에 유추되기 위하여 삶을 위조해 왔다
그러나 배추가 정원 근처의 외출을 꿈꾸지 않듯
장미 또한 텃밭 근처의 포만을 넘겨다보지 않는다
아침이면 태양은, 하나의 주제로 성장했다가
정원과 텃밭 근처에 다다르면
그 속에 매장된 두 종류의 내력들을 유추하느라 쇠약해지곤 했다
이 세상 누가
배추와 장미 그 아름다움의 내면이 같다고 유추할 수 있겠는가
내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소한 논쟁 사이에서 늘 그랬던 것처럼
배추와 장미, 그 틈새에서 나는 아직 끝도 없이
내면의 성분을 유추하느라 온종일 서성이고 있다
3
세상 어느 배추가 제 내면을 버리고 장미에게로 망명할 것이며
세상 어느 장미가 제 속성을 버리고 김장 속으로 뛰어들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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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곳
몇 개 뭉툭한 위로와 사무용 슬픔들이 첨부된 후,
이름은 곧바로 삭제되었고
동사무소 직원의 손에서 내게 넘어온 서류는 헐렁하다
한 사람 몫의 이승이 지워진 서류를 들고서 2월의 거리로 나선다
음력의 추억들은 겨울바람처럼 흔들리기 시작하고
쉽사리 높낮이가 변하는 그래프처럼 온통 혼란스럽다
아버지는 더 이상,
구름을 몰고 다니거나 위급한 근심들을 안겨주지 못할 것이다
주인을 잃은 슬픔들은
기억 한켠에 그늘 한두 개쯤 더 장만하게 될 것이고 나는 지금
습관처럼 그의 집에 전화를 건다
순간, 날카로운 모서리에 찔리듯 화들짝 깨어나는 기억
아버지는 없다
밤마다 위급함을 이끌고 중환자실을 통과하던 사연들과
눈물을 빌리러 그의 머리맡을 찾곤 했던 내 오랜 습관들을
이제는 내려놓아야 한다
아, 되돌릴 수 없는 먹구름들
오늘 이후 나는, 되돌아올 것들에 대해선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한다
어떤 후회나 쓸쓸함은 모두 빈곳이 되었다
세상의 뒷면이 된 아버지는 깊은 산 속에 심겨졌고
이승의 휴일엔, 챙겨야 할 방문지가 하나 더 늘었다
이제 내 안의 금요일쯤엔 폭설이 세상을 잠글 것이고, 빈곳은 한동안
고체처럼 단단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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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희 / 1968년 경기 양평 출생. 2006년 〈한라일보〉신춘문예 당선. 200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 수혜,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문학상 대상, 2008년《시와시학》신인상. 시집 『빈 곳』(2009. 5, 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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