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처럼 낯선 (외 1편)
하종오
서른 줄 사내는 골목에서 이불을 주워 왔다
마흔 줄 사내는 폐차장에서 담요를 주워 왔다
오십 줄 사내는 쓰레기 하치장에서 카펫을 주워 왔다
그리하여 세 사내는
밤마다 온몸에 말고
지하도에 누워서 잠들고
낮마다 접어서 옆구리에 들고
역전에서 어슬렁거리고
아무리 담배가 당겨도
한 사람에게서 한 개비만 얻어
아끼며 맛나게 피웠다
서른 줄 사내는 꼭 한 번 카펫을 덮고 싶어했다
마흔 줄 사내는 꼭 한 번 이불을 덮고 싶어했다
오십 줄 사내는 꼭 한 번 담요를 덮고 싶어했다
그러면 세 사내는
꿈에 먼 집으로 돌아가
뜨거운 아랫목에 누워서
식구의 다리를 사타구니에 끼고
달게 잠자겠다고 말했지만
서로서로 바꾸어가며
한 번도 덮지 않고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다가
날씨가 더워졌다
서른 줄 사내는 골목에다 이불을 갖다 놓았다
마흔 줄 사내는 폐차장에다 담요를 갖다 놓았다
오십 줄 사내는 쓰레기 하치장에다 카펫을 갖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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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자
밥 먹자
이 방에 대고 저 방에 대고
아내가 소리치니
바깥에 어스름이 내렸다
밥 먹자
어머니도 그랬다
밥 먹자, 모든 하루는 끝났지만
밥 먹자, 모든 하루가 시작되었다
밥상에 올릴 배추 무 고추 정구지
남새밭에서 온종일 앉은 걸음으로 풀 매고 들어와서
마당에 대고 뒤란에 대고
저녁밥 먹자
어머니가 소리치니
닭들이 횃대로 올라가고
감나무가 그늘을 끌어들였고
아침밥 먹자
어머니가 소리치니
볕이 처마 아래로 들어오고
연기가 굴뚝을 떠났다
숟가락질하다가 이따금 곁눈질하면
아내가 되어 있는 어머니를
어머니가 되어 있는 아내를
비로소 보게 되는 시간
아들 딸이 밥투정을 하고
내가 반찬투정을 해도
아내는 말없이 매매 씹어먹으니
애늙은 남편이 어린 자식이 되고
어린 자식이 애늙은 남편이 되도록
집 안으로 어스름이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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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오 / 1954년 경북 의성 출생. 1975년 《현대문학》추천완료. 시집 『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사월에서 오월로』『넋이야 넋이로다』『분단동이 아비들하고 통일동이 아들들하고』『꽃들은 우리를 봐서 핀다』『정』 『깨끗한 그리움』 『님시편(詩篇)』『쥐똥나무 울타리』『사물의 운명』『님』『지옥처럼 낯선』『베드타운』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