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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읽기

[시]고백 (외 3편) / 남진우

작성자강인한|작성시간09.11.19|조회수574 목록 댓글 0

고백 (외 3편)

   남진우

 

 

 

내 그대에게 사랑을 고백함은

입 속에 작은 촛불 하나 켜는 것과 같으니

입 속에 녹아내리는 양초의 뜨거움을 견디며

아름다운 동그란 불꽃 하나 만들어

그대에게 보이는 것과 같으니

 

아무리 속삭여도

불은 이윽고 꺼져가고

흘러내린 양초에 굳은 혀를 깨물며

나는 쓸쓸히 돌아선다

 

어두운 밤 그대 방을 밝히는 작은 촛불 하나

내 속삭임을 대신해 파닥일 뿐

 

 

달의 어두운 저편

 

 

 

달은 모래로 뒤덮여 있어

바람이 불면 모래 쓸리는 소리가 들려오지

모래바람 속으로 걸어가 누워봐

부우연 달빛 속 둥그렇게 떠오르는 모래무덤들이 보이지

여기저기 흩어진 모래무덤에서

희디흰 뼈들이 빛을 뿜어내고 있어

죽어가는 자가 뿜어내는 빛이 지상에 가득 차

세상을 더욱 적막하게 가라앉히고 있어

사방에서 모래가 흘러내려

발등을 덮고 가슴을 덮고 내 온몸을 덮고

아, 나 또한 서서히 모래무덤이 되어가는 걸까

밤새 발이 푹푹 빠지는 달 속을 헤매다 돌아오면

옷깃에서도 구두에서도 모래알이 툭툭 떨어져 내리지

달은 모래로 뒤덮여 있어

아무도 가보지 못한 달의 어두운 저편

거기 내가 누울 자리가 기다리고 있어

바람이 불면 내 몸에서 씻겨나온 모래알들이

부우연 달빛 속에서 하염없이 흩날리지

허공을 떠다니는 모래무덤에서 한 방울

눈물이 떨어져 내려도

이내 막막한 허공 어디선가 말라붙어버리지

아무도 없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다만 차가운 어둠 속에서 우리 모두 이렇게

죽어가는 거야

달의 어두운 저편

 

 

꿀벌치기의 노래

 

 

 

내 가슴의 벌집 속엔 꿀 대신 피가 가득 고여 있지

귀기울여봐, 검은 벌들이 잉잉대며

심장 속에서 날아다니는 소리를

 

밤이면

소리없이 다가온 그림자가 내 가슴을 열고

벌집 속에 검은 피로 밝힌 등불을 켠다

 

 

달이 나를 기다린다

 

 

 

어느 날 나는

달이

밤하늘에 뚫린 작은 벌레구멍이라고 생각했다

 

그 구멍으로

몸 잃은 영혼들이 빛을 보고 몰려드는 날벌레처럼 날아가

이 세상을 빠져나가는 것이라고

 

달이 둥그러지는 동안

영혼은 쉽게 지상을 떠나지만

보름에서 그믐까지 벌레구멍은

점차 닫혀진다 비좁은 그 틈을 지나

광막한 저 세상으로 날아간 영혼은

무엇을 보게 될까

 

깊은 밤 귀 기울이면

사각사각

달벌레들이 밤하늘의 구멍을 갉아먹는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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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진우 / 1960년 전북 전주 출생.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198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이 당선되어 작품활동 시작. 시집 『깊은 곳에 그물을 드리우라』『죽은 자를 위한 기도』『타오르는 책』『새벽 세 시의 사자 한 마리』『사랑의 어두운 저편』. 현재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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