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외 3편)
남진우
내 그대에게 사랑을 고백함은
입 속에 작은 촛불 하나 켜는 것과 같으니
입 속에 녹아내리는 양초의 뜨거움을 견디며
아름다운 동그란 불꽃 하나 만들어
그대에게 보이는 것과 같으니
아무리 속삭여도
불은 이윽고 꺼져가고
흘러내린 양초에 굳은 혀를 깨물며
나는 쓸쓸히 돌아선다
어두운 밤 그대 방을 밝히는 작은 촛불 하나
내 속삭임을 대신해 파닥일 뿐
달의 어두운 저편
달은 모래로 뒤덮여 있어
바람이 불면 모래 쓸리는 소리가 들려오지
모래바람 속으로 걸어가 누워봐
부우연 달빛 속 둥그렇게 떠오르는 모래무덤들이 보이지
여기저기 흩어진 모래무덤에서
희디흰 뼈들이 빛을 뿜어내고 있어
죽어가는 자가 뿜어내는 빛이 지상에 가득 차
세상을 더욱 적막하게 가라앉히고 있어
사방에서 모래가 흘러내려
발등을 덮고 가슴을 덮고 내 온몸을 덮고
아, 나 또한 서서히 모래무덤이 되어가는 걸까
밤새 발이 푹푹 빠지는 달 속을 헤매다 돌아오면
옷깃에서도 구두에서도 모래알이 툭툭 떨어져 내리지
달은 모래로 뒤덮여 있어
아무도 가보지 못한 달의 어두운 저편
거기 내가 누울 자리가 기다리고 있어
바람이 불면 내 몸에서 씻겨나온 모래알들이
부우연 달빛 속에서 하염없이 흩날리지
허공을 떠다니는 모래무덤에서 한 방울
눈물이 떨어져 내려도
이내 막막한 허공 어디선가 말라붙어버리지
아무도 없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다만 차가운 어둠 속에서 우리 모두 이렇게
죽어가는 거야
달의 어두운 저편
꿀벌치기의 노래
내 가슴의 벌집 속엔 꿀 대신 피가 가득 고여 있지
귀기울여봐, 검은 벌들이 잉잉대며
심장 속에서 날아다니는 소리를
밤이면
소리없이 다가온 그림자가 내 가슴을 열고
벌집 속에 검은 피로 밝힌 등불을 켠다
달이 나를 기다린다
어느 날 나는
달이
밤하늘에 뚫린 작은 벌레구멍이라고 생각했다
그 구멍으로
몸 잃은 영혼들이 빛을 보고 몰려드는 날벌레처럼 날아가
이 세상을 빠져나가는 것이라고
달이 둥그러지는 동안
영혼은 쉽게 지상을 떠나지만
보름에서 그믐까지 벌레구멍은
점차 닫혀진다 비좁은 그 틈을 지나
광막한 저 세상으로 날아간 영혼은
무엇을 보게 될까
깊은 밤 귀 기울이면
사각사각
달벌레들이 밤하늘의 구멍을 갉아먹는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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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진우 / 1960년 전북 전주 출생.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198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이 당선되어 작품활동 시작. 시집 『깊은 곳에 그물을 드리우라』『죽은 자를 위한 기도』『타오르는 책』『새벽 세 시의 사자 한 마리』『사랑의 어두운 저편』. 현재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