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 메시지에 대하여 (외 2편)
윤석정
빛의 속도로 너에게로 달려가는 전파가 지구를 헤맨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너에게로 보낸 문자가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속도는 파장이 헤맨 시간과 비례한다 사랑이란 돌에 새긴 최초의 문자보다 사뭇 지우기 쉬운 문자 메시지 우리가 문자로 사랑을 하기엔 너무나 가벼워 0과 1로 전부 표현하기 네가 그리워 가만, 화성인의 수신기에 접속을 시도하려는 수백만 헤르츠 전파가 우주의 극점에 닿지 못하고 블랙홀에서 길을 잃는다 더러는 해저 심해어의 부레에서 오리무중이 된다 양철 지붕을 탁탁 쳐 대는 빗줄기처럼 한사코 버림받은 나에게로 넘쳐 버린다
떫은 생
봄이 왔다 나는 설익은 약속처럼 헤어지기 바빴다
꽃이 떨어진 자리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여린 감들
구부러진 길 끝에 앉아 나는 태양의 부피를 재곤 했다
내 심장에 수혈하는 햇살바늘
여름부터 검은 바늘자국이 따끔거렸다
아프지 않을 때만 감들이 보였는데
감들의 낯빛은 점점 태양을 닮아갔다
새부리에 쪼인 감들은 유독 붉디붉었다
감들은 속곳을 전부 드러낸 채 떨어지거나
가까스로 공중에 매달려 있었다
새들이 빼먹지 못한 감씨가 얼핏 보이곤 했다
몸을 눈부시게 열고도 길에서 떠날 수 없는
반쪽짜리 생, 그 감은 한 번 꽃피자 입을 쫙 벌리고
뿌리에 달아붙은 눅눅한 어둠까지 감아올렸다
어둠은 점점 바깥을 달콤하게 부풀리며
심장에 몰려와 단단하게 여물어갔다
눈이 내리자
쭈글쭈글한 감들이 서둘러 햇볕을 쬐러나왔다
더는 빨아들일 어둠이 없어서 바깥을 컴컴하게 만들기 시작했는데
끝내 어둠에 덮여 어둠 속에 들어간 늙은 감들이
떫디떫은 심장을 남겨놓았다
다시 봄이 왔다 나는 어둠을 빨아들이기 위해
가지 끝으로 옮겨 앉았다
삼천리 인생
삼천리 자전거가 귀퉁이에 방치된 채
폐물이 될지 몰라 걱정스런 표정이다
늑골은 엿가락처럼 구부러져 있고
꽃잎 스티커가 벗겨진 곳마다 녹슬어 있다
터진 혈관을 흉측하게 드러낸 타이어에는
오래 달려온 거리만큼
시커멓게 타들어간 마찰음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천리는 더 갈 듯 한 바퀴살이 바퀴를 받치던
팽팽한 장력으로 포구의 귀퉁이를
살살 바다로 밀치고 있다
어스름이 포구 쪽으로 감겨올 때쯤
밀물이 들어 바퀴살이 물살에 빨려든다
구부러진 늑골을 펴는 듯한 물살이
매끄러운 안장에 홀짝 올라탄다
아무것도 걱정할 게 없지?
마침 수평선에서 잠수하던 달빛이
포구의 귀퉁이로 펼쳐놓는 물결은 기차다
물결 따라 자전거 손잡이는 보이다 사라지곤 한다
자전거를 어디로 몰고 가려 했을까
잘 모르겠지만 오늘은 끝까지 달리자
항상 충실히 달리다 막장에 온 삼천리 인생
귀퉁이를 버리고 신나게 달려보자
앞을 가로막은 방파제에 부딪히며
지상으로 페달을 밟는 수억 만개의 물방울처럼
녹슬고 굽어있던 나의 영혼이 힘껏 페달을 굴린다
꼿꼿이 윗몸을 세우고 양 팔을 벌리자
포구가 바다로 굴러가기 시작한다
정말 아무것도 걱정할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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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정 / 1977년 전북 장수 출생 원광대 국문과 졸업 중앙대 대학원문예창작과 졸업.
200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오페라 미용실’ 당선. 시집 『오페라 미용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