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의 시간을 엿보다
김추인
늦은 하산 길에 밤을 만나다
한뎃잠 자는 것들의 뒤척임 짚으며
나무에 귀를 대니
출렁이는 강물소리 듣겠다
몇몇 지류들이며
반짝이는 물너울 검은 등짝도 보겠다
천강에 달 하나씩 내걸어
우으로 우으로 흐르는 나무여
물푸레 만엽의 잠이여
긴 발자국 하나 네 물소리를 따라가고 있는 거 아니?
강물을 잘라 먹으며
제 생의 눈금 늘여가고 있는 야행의 저
집도 없이 노숙을 일삼는 저
발바닥 인생의 민달팽이를 아니?
먹거리나 보채는 수만 이빨들에
싫은 내색 없이
제 잎새들로 밥 한 상 차려주고
밤새 사각사각 숟가락질 소리 그냥 듣는 거니?
한 입 베어 물면 만개의 구멍 틈새로 보일
치설*에 살 벤 조각달의 잠도 노숙이겠다
*치설: 달팽이 혓바닥에 솟은 2만 6천개의 이빨 같은 돌기
— 격월간 《정신과표현》 2010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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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추인 / 1947년 경남 함양 출생. 연세대 교육대학원 국문학과를 졸업. 1986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온몸을 흔들어 넋을 깨우고』, 『나는 빨래예요』, 『광화문 네거리는 안개주위보』,『벽으로부터의 외출』,『모든 하루는 낯설다』,『전갈의 땅』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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