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깡땡*의 일기
전기철
의사들은 모두 시위 현장으로 가 버렸다.
독감 걸린 눈을 억지로 끌고 병원에서 나와 의사를 찾아 시위현장으로 가는 길에 지하철을 타니 노약자석에는 수상한 표정들만 켜켜이 쌓여 있다.
거리는 이미 피 묻은 부리를 한 비둘기들이 점령해 버렸고 건강한 사람들은 모두 햇빛을 피해 지하로 숨었다. 노려보는 비둘기들에게 눈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의사들의 시위현장을 찾기 위해 핸드폰을 여니 어느 교회에서 축복을 약속한다.
교회에 의사도 있나요.
종로에서 광화문 쪽으로 걸어가는데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영어로 된 피켓을 들고 행진한다. 건물마다 환자복 무늬의 창문이 걸렸다.
의사 선생님이시죠?
벌써 의사를 찾는 이들이 거리에 넘친다.
우리 쥐들을 못 보았나요? 실험실의 쥐요. 모두 탈출하고 말았어요.
연구실의 박사들이다. 실험실의 쥐들이 모두 의사를 따라간 모양이다.
비둘기들이 있는 곳에 쥐들이 있을 거예요.
길 건너편으로 노숙자들이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피켓을 들고 행진한다.
노점상들이 히죽거리며 박수를 판다.
환자복을 입은 사람이 지나가며
의사가 없다면 예수를 찾아줘요! 부처도 괜찮아요.
눈빛이 이미 한 마디의 생을 넘어섰다.
의사들은 어디쯤 가고 있나요?
가리키는 손가락 끝에서 의사가 낙오했다. 의사는 청진기와 반창고를 꺼낸다.
청진기를 받아요. 시트가 하늘에서 펄럭이는 게 안 보이시나요.
하늘을 올려다보니 펄럭이는 시트가 구름처럼 내내 훌쩍인다.
엉겁결에 청진기가 반창고를 받아들고 오도 가도 못하고 만다.
저 멀리 비둘기들이 뒤뚱거리며 걸어오는 길로 흰 가운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구호를 외치며 피켓을 올렸다 내렸다 한다.
의사들을 찾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빨리 걷는다. 하얀 가운들이 보인다.
선생님 안녕!
레그혼이다. 알을 낳다 말고 거리로 뛰쳐나온
주체할 수 없는 갈증이 인다.
레그혼을 붙잡고 청진기와 반창고를 부탁한다.
하늘에는 바느질 자국이 선연하다. 시트들로 뒤덮인 하늘을 누군가가 꿰매고 있는 것이다.
빗방울이 재봉틀 소리를 내며 바느질을 하고 있다. 세상을 바느질하는 비!
상처 많은 구름은 거리 곳곳에서 펄럭이고 가위질 당한 곳마다 빗방울은 재봉질을 한다.
그때 얼굴 없는 누군가가 귀에 대고 속삭인다.
장기 삽니다. 간은 천만 원 이상, 폐는 오백만 원 이상, 위장은 삼백만 원 이상…. 생각 있으면 따라와요.
뒤를 돌아보니 아무도 없다.
내 간은 얼마나 할까? 가격을 생각하니 소름이 끼친다. 성조기가 펄럭거리는 광화문 뒷골목을 두리번거리다가 거리의 뒤편에 있는 나의 도서관<치킨호프>로 간다.
오백 시시 한 권에 치킨 하나요.
치킨이 모두 거리로 나간 줄 모르시나요?
도서관에서 늦은 밤까지 공부하다가 생애에 실컷 취하기는 예삿일이다. 집에 가면 처방전을 받아오지 못했다고 또 야단을 맞을 것이다.
알 하나도 품지 못한 주제에….
독감으로 쓰러지기 전에 조치를 취해야 할 텐데….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호프집이나 들락거리는 내 장기의 가격을 아무리 계산해도 답이 나오지 않으니
내일 다시 가봐야겠다. 성조기가 꽂혀 있는 새들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 사르트르의 소설 『구토』의 주인공
ㅡ시집『로깡땡의 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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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철 : 1954년 전남 장흥 출생.전남대와 서울대학 대학원서 석.박사 과정 수료. 1988년 《심상》으로 등단. 시집 『나비의 침묵』『풍경의 위독』『아인슈타인 달팽이』『로깡땡의 일기』 평론집 『민족문학과 비평정신』 번역서 『시가 있는 금강경』이 있음.《유심》 편집위원 숭의여자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