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밥바라기 (외 2편)
황학주
당신 쪽으로 종일 나를 굴린다. 당신은 내게로 움푹해진다. 언틀먼틀 애꿎은 삶의 간격이 들어맞는다. 다툰 일이 있은 어제와는 또 다른 얘기다.
당신은 발을 바꾼다. 그간에 개 짖는 창밖 저녁별 하나가 제자리에 놓인다. 돌아누워 잘 때에도 한 발은 내 발에 얹어 수면(睡眠) 위로 다리를 놓아둔다. 배고픈 쪽이다.
당신에게 손을 가져간다. 배를 만질 때 찬반(贊反)이 반반인 자세로 몸이 놀란다. 살이 오른 곳에서 배고픈 뒤까지 별이 발길질을 하며 간다.
종일 자다 물을 먹는 이런 또박또박한 목마름이 있는 우주, 입을 맞춘 첫날 쪽으로, 사랑이 간다.
노랑꼬리 연
노랑꼬리 달린 연을 안고
기차로 퇴근을 한다 그것은 흘러내린 별이었던 것 같다
때론 발등 근처에 한참을 있었던 것 같다
사랑은 손을 내밀 때 고개를 수그리는 것이니까
길에 떨어진 거친 숨소리가 깜박거리는 것을 볼 수 있었던 거다
아물면서도 가고 덧나면서도 가는 밤에 우리는 부끄러웠을라나
그런 밤엔 가장 듣고 싶은 말이 있어야 할지
네게 물어도 될 것 같았다
도착하고 있거나 잠시 후 발차하는
기차에 같이 있고 싶었다
그런 내 퇴근은 날마다 멀고 살이 외로워
노랑꼬리 연이 필요했던 것이리라
어디에 있든 너를 지나칠 수 없는 기차로 갔던 것 같다
너의 말 한 마디에 하늘을 날 수 있는 댓살이 내 가슴에도 생겼다
꼬리를 자르면서라도 사랑은 네게 가야 했으니까
그것은 막막한 입맞춤 위를 기어오르는 별이었던 것 같다
내 사람이라 말할 수 있는 그런 운명은
오래오래 기억하다 해발 가장 높은 추전역 같은 데 내려주어야 한다
바람이 분다
지금은 사랑하기엔 안 좋은 시절
바람 속으로 또다시 바람이 분다
지금은 사랑하기에 가장 좋은 시절
네게로 가는 별, 댓살 하나에 온몸 의지한
노랑꼬리 연 하나 바람 위로 뜬다
협궤
집 앞에 뜬 섬들
틈을 비집고 기관차 없는 협궤가 지나간다
협궤 지나는 그 길이
어떤 섬을 잠재운 일이 있고
귀를 잡고 일으켜 세운 일이 있다
풍경風磬을 때려 이를 부러뜨리고
잠 못 드는 밤을 따라 흉곽을 지나간 적이 있다
갈매기 똥이 허옇게 덮인
그만 오므린 섬의 무릎 사이에
상스러워지려는 석양을 올려놓은 일도 있었을 테다
말의 수레를 모두 빠뜨린 수평선으로 협궤가 몸을 옮긴다
수평선은 오늘 모노레일
평생 받은 물소리를 꾸역꾸역 도로 흘려보내며
내 안에 간신히 당신이 멎는다
협궤뿐인 나
나뿐인 당신
한쪽이 파인 달이 섬들 속에서 씻겨 나온다
— 시집《노랑꼬리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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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학주 / 1954년 광주 출생. 1987년 시집 『사람』으로 등단. 시집 『내가 드디어 하나님보다』『갈 수 없는 쓸쓸한』『늦게 가는 것으로 길을 삼는다』『너무나 얇은 생의 담요』『루시』『저녁의 연인들』『노랑꼬리 연』등. 현재 아프리카민간구호단체 피스프렌드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