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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읽기

[시]메르세데스 소사 (외 2편) / 구광렬

작성자강인한|작성시간10.07.04|조회수310 목록 댓글 0

메르세데스 소사 (외 2편)

 

  구광렬

 

 

 

   1.

 

지구 반대편 구석에서 노래 한 줄로 깨달았습니다

 

구석은 세상을 향해 열려있건만 세상은

구석을 향해 닫혀있다는 걸

 

세상 힘든 것들 구석으로 몰리건만

묵묵히 구석은 그 어깨들을 받쳐준다는 걸

 

수평선에도 구석이 있고

그 면도날 같은 파도의 한 줄 구석에도

등짝을 곧게 펴는 고기들이 산다는 걸

 

갈대의 울부짖음을,

못에 박힌 빈 바가지의 달가닥거림을,

구석에서 태어난 바람은

입이 꽉 틀어 막힌 것들을 대신해 소릴 내 준다는 걸

 

그 바람 앞에선

작고 낮을수록 더 떳떳할 수 있다는 걸

 

   2.

 

사람의 목구멍이

골짜기란 걸 알았습니다

물이 흐르고 새가 지저귀고

꽃이 피는

 

사람의 목소리가

바람이란 걸 알았습니다

물소리, 새소리, 꽃향기를

코, 귀에까지 실어다주는

 

사람들의 삶이

조각조각 퍼즐이란 것도 알았습니다

한 조각만 빠트려도

문제를 풀 수 없는

 

아, 골짜기에서 바람이 불듯

사람의 목구멍에서

노래가 치솟음을 보았습니다

 

그 노래,

떨어져나간 퍼즐조각 같은

목숨들을 불러 모아

또 한 번 神의 얼굴로 풀어내는

 

 

————

*메르세데스 소사(Mercedes Sosa) : 아르헨티나 출신의 저항가수, 2009년 10월 5일 타계.

 

 

불맛

 

 

 

어머닌 불맛을 안다고 하셨다

불간이 잘 배어야 음식은 맛있는 법이라며

여린 불, 센 불

소금 대신 불구멍으로 간을 맞추셨다

이 모두,

벼락에 구워진 들소의 안창살을 맛봤다던

네안데르탈인을 닮았었던 아버지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버지 돌아가신 후,

우리 집 음식은 갈수록 더 뜨거워져만 갔다

미각과 온각을 혼동하고 계시던 어머닌,

입천장이 훌러덩 벗겨지는 펄펄 끓는 곰국까지

싱겁다고 하셨다

그랬다, 그 즈음 당신 뱃속의 불길은

활활 요원(燎原)으로 번지고도 남음이 있었다

안방에서 속살 타는 냄새, 행랑까지 새나왔으며

습습한 날 그 냄샌, 낮은 개나리담장을 타고

삽작을 나섰다

그랬다, 그 즈음 어머닌

안동 간고등어보다 더 짤 것 같았던

당신 속살마저 싱거워하셨다

 

 

 

유리의 바다

 

 

   1

 

   반송우편처럼 돌아온 해변, 편지봉투 위의 스탬프 자국 같은 발자국들을 세본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갔다 아니 한 사람이 수없이 지나갔다 발자국들이 자살을 위해 벗어놓은 신발들처럼 가지런하다

 

   2

 

   사구(砂丘)엔 선명했던 눈물 자국들이 빛나고 늑골이 허옇게 파헤쳐진 수평선의 선분 조각들, 태생적으로 얕고 가벼운 죽음을 사랑했는지 손가락만 한 굵기와 깊이 속에서 삶의 증거들을 뿜어댄다

 

   3

 

   페달을 밟는다 새끼의 주검을 안고 암벽을 오르는 어미원숭이처럼 온몸을 굴려보지만 꿈속에서처럼 발이 묶인다 바큇살이 살점 떨어져나가는 소리를 낸다 무한동심원을 그리던 실루엣, 해변의 문양으로만 남는다

   쨍그랑, 금이 간다 나의 바다, 유리의 바다

 

 

 

                                          — 시집 『불맛』(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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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광렬 / 1956년 출생. 동물을 유난히 좋아해 일찍이 파타고니아에서 목동생활을 하고 싶었던 청년 시절, 멕시코로 건너갔다. 멕시코국립대학에서 중남미문학을 공부(문학박사)한 뒤, 멕시코 문예지 《마침표(El Punto)》 및 《마른 잉크(La Tinta Seca)》에 시를 발표하고 멕시코국립대학교 출판부에서 시집 『텅 빈 거울(El espejo vac o)』을 출판한 후 중남미 시인이 되었다. 국내에서는 〈오월문학상〉 수상과 함께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하늘보다 높은 땅(La tierra mas alta que el cielo)』 등 몇 권의 스페인어 시집과 『나 기꺼이 막차를 놓치리』 등 몇 권의 국내시집, 『체 게바라의 홀쭉한 배낭』 등 다수의 문학 관련 저서가 있다. 멕시코문협특별상, 스페인대사상, 브라질 ALPAS-XXI 라틴시인상 등을 수상했으며, 2008년 aBrace 중남미시인상 후보로 오른 뒤, 2009년에도 후보에 올랐다. 현재 울산대학교, 대구교대 등에서 시창작과 중남미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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