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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읽기

[시]봄의 약속 (외 1편) / 마종기

작성자강인한|작성시간10.07.07|조회수299 목록 댓글 0

봄의 약속 (외 1편)

 

  마종기

 

 

 

지난밤 우리의 삶이

어디까지 갔었지?

산도 하나 넘고

배 저어 강도 하나 건너서

인연과 고통이 같은 것이라는

어려운 푯말만 읽고 헤어졌던가.

 

떠다니는 길에서 혼자가 되어

혹 연인에 취해 긴 잠이 들면

괜찮아,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

지구의 가슴까지 이미 간 것을,

기다림과 황야가 같다는 것을,

누가 아니라 한들 섭섭해하랴.

 

살수록 추워지는 도시에 가도

긴 유언이 되어 움츠리지 않겠다.

내 뼈는 아직 너를 떠나지 않았다.

봄이 현란한 목소리로 웃고 있는 사이,

나이 든 구름이 하늘을 지나가고

아무도 믿지 않았던 그 약속이 도착한다.

 

 

 

디아스포라의 황혼

 

 

 

내가 원했던 일은 아니지만

안녕히 계세요,

나는 이제 가겠습니다.

산다는 것은 떠나는 것이라지만

강물도 하루 종일 떠나기만 하고

물살의 혼처럼 물새 몇 마리

내 눈에 그림자를 남겨줍니다.

 

한평생이라는 것이

길고 지루하기만 한 것인지,

덧없이 짧기만 한 것인지

가늠할 수 없는 고개까지 왔습니다.

그대를 지켜만 보며, 기다리며

나는 어느 변방에서 산 것입니까.

 

순박하고 트인 삶만이 시인의 길이고

마지막 유산일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경건하고 싱싱한 날들은 멀리 가고

저녁이 색을 바꾸며 졸고 있습니다.

당신의 마지막 포옹만 믿겠습니다.

내 노래는 그대를 만나서야, 드디어

벗은 몸의 황홀한 화음을 탔습니다.

주위의 감정이 눈치 보며 소리 죽이고

순결의 부드러움만 내게 남는 것이

이 나이 되어서야 새삼 눈물겹네요.

 

 

 

                                       —시집『하늘의 맨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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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종기 / 1939년 일본 도쿄 출생. 연세대 의대, 서울대 대학원을 마치고 1966년 도미, 미국 오하이오주 톨레도에서 방사선과 의사로 근무. 1959년 《현대문학》추천으로 등단한 뒤, 『조용한 개선』『두번째 겨울』『변경의 꽃』『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랴』『그 나라 하늘빛』『이슬의 눈』『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우리는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하늘의 맨살』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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