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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묵묵부답 / 정끝별

작성자강인한|작성시간10.10.11|조회수437 목록 댓글 0

묵묵부답

 

   정끝별

 

 

 

죽을 때 죽는다는 걸 알 수 있어?

죽으면 어디로 가는 거야?

죽을 때 모습 그대로 죽는 거야?

죽어서도 엄마는 내 엄마야?

때를 가늠하는 나무의 말로

여섯 살 딸이 묻다가 울었다

 

입맞춤이 싫증나도 사랑은 사랑일까

반성하지 않는 죄도 죄일까

깨지 않아도 아침은 아침일까

나는 나로부터 도망칠 수 있을까

흐름을 가늠하는 물의 말로

마흔 넷의 나는 시에게 묻곤 했다

 

덜 망가진 채로 가고 싶다

더 이상 빚도 없고 이자도 없다

죽어서야 기억되는 법이다

이젠 너희들이 나를 사는 거다

어둠을 가늠하는 속 깊은 흙의 말로

여든 다섯에 아버지는 그리 묻히셨다

 

바닥을 향해 피는 상수리 꽃을 마주하여

젖은 물살을 저어가는 지느러미뼈를 마주하여

흙에서 깨어나는 달팽이 촉수를 마주하여

고스란히 제 짐 지고 제 집에 들어앉듯

다문 입술에 맺힌 말간 물집들

 

 

 

                            —《문학청춘》2010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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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끝별 / 1964년 전남 나주 출생. 1988년 《문학사상》(시), 1994년 〈동아일보〉신춘문예(평론)로 등단. 시집 『자작나무 내 인생』『흰 책』『삼천갑자 복사빛』『와락』등. 현재 명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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