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재
이제니
여기저기에 꽃이 있었다
여기저기에 내가 있었다
너는 꽃을 뒤집어쓰고 죽어버렸다
붉고 환한 것들은 오로지 재
느리게 소용돌이치며 구름의 재
어둠 속에 어둠이 있었다
불타오른 자리는 희고 맑았다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쓸쓸한 사람
그림자가 없는 사람은 이미 죽은 사람이다
흔적은 도처에 있었다
꽃은 가지 끝에서 피어올랐다
꽃은 그림자들의 재
재는 그림자들의 꽃
감은 눈으로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보이는 대로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뒤를 돌아본다 뒤를 돌아본다
꽃잎 위로 회색이 내려앉고 있었다
차가운 물에 천천히 얼굴을 묻었다
—《현대시》2011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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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니 / 1972년 부산 출생. 2008년 〈경향신문〉신춘문예에 「페루」당선. 시집 『아마도 아프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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