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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해해요 (외 1편) / 김중일

작성자강인한|작성시간11.08.16|조회수558 목록 댓글 0

  이해해요 (외 1편)

 

     김중일

 

 

 

   프레스에 잘려진 새끼손가락을 땅에 묻으니 하룻밤 사이에 무성한 나무로 자랐습니다. 이해할 수 있겠어요 그런 거? 이 봄밤에 민머리와 배불뚝이는 핑크기타와 꽃무늬돗자리, 묽은 술과 삼 일 펄펄 끓는 잠 속에서 푹 삶은 돼지머리고기를 들고 그 나무 아래로 피크닉을 갔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캄캄한 곳에 위치한 정전된 전구 공장을 지나는 동안, 비 맞은 생쥐처럼 떨리는 손을, 쥐덫같이 찬 상대의 손에 내맡긴 채 말입니다. 그들은 나무 아래 성긴 달그늘에 돗자리를 깔고 향기로운 고기와 술을 나눴습니다. 꽃무늬돗자리가 그들을 조금씩 강 쪽으로 북상시켰습니다. 강을 둘러싼 모든 풍경들이 키들거리며 굵고 억센 손가락으로 그들을 거머쥐어 호주머니 속에 넣었습니다. 이해할 수 있겠어요 그런 빈털터리들을? 양 호주머니만 냄새나는 엉덩이처럼 빵빵하게 부풀었습니다. 불룩한 아랫배와 민머리 위에 달빛이 검은 강물처럼 희번덕이며 흐르고, 어이 민머리 너 이리로 와봐. 손에 든 거 갖고 와봐. 민머리가 꿈밖으로 몰래 반입한 두통약은 퉁퉁 불은 돼지머리 만했습니다. 그들은 봄밤 머리고기를 썩썩 잘라 먹으며 조금씩 거나하게 취해갔습니다. 어이 배불뚝이 노래 한 곡 해봐. 왜 있지 않나 그거. 처녀 때 잘 불렀던 노래 한 곡 해봐. 후렴만 기억나는 그 노래 한번 해봐. 그렇게 무수한 밤에 걸쳐 밤의 무릎뼈 같은 달이 그믐으로 접혔습니다. 하얗게 튼 입술로 그들은 고래고래 악을 썼습니다. 자글자글한 주름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노래들이, 주름 따라 산산이 깨진 도자기처럼 바닥에 흩어졌습니다. 이상해 세상이 너무 조용해. 민머리 우리 어디라도 갈까? 우리 너무 많이 왔어 배불뚝이. 민머리는 무거운 추처럼 어깨를 짓누르던 밤과 젖은 옷처럼 몸에 감기는 비를 피해 기타 속으로 기어들어갔습니다. 배불뚝이는 가랑이 사이로 핑크기타를 끌어안고 노래했습니다. 노래로부터 탈옥한, 열댓 곡의 연주까지 모두 끝나자 민머리는 거미줄처럼 뒤엉킨 기타 줄을 걷어내고 기타 구멍을 비집으며 기어 나왔습니다. 그날은 아무도 태어나거나 울지 않기로 이미 오래전 약속된 날이었습니다.

 

 

 

  비의 자화상

 

 

 

   허밍, 내 코끝을 맴도는 밤의 냄새 같은

   캔버스 위를 허밍처럼 흩날리는 붉은 비

 

   비오는 날 침대 위에 수북이 떨어져 있는 머리카락들은 나를 그리던 세필의 흔적. 일생을 떠도는 허밍 같은 나를 스케치한 흔적. 베개 위에 머리카락은 매일 잠에서 깨면 몸 안에서 밖으로 삐져나와 있는 망령 같은 내 밑그림의 흔적. 나는 잠시 나로 채색되어 있을 뿐. 내가 지난 계절 귀뚜라미로 밤새 흥얼거렸던 허밍은, 먼 대륙까지 날아가 잡풀로 무수히 웃자라 있다. 팔레트 한 쪽에 덜어놓은 물감덩어리 같은 대초원의 양떼들이 그 잡풀 속에, 내가 쏟아낸 허밍 속에 코를 박고, 듣다가 울다가 울다가 뜯다가 하며 검게 뒤섞이는 밤. 나는 하얗게 튼 입술의 사시나무로, 긴 머리 까만 발의 밤들을 기분 따라 바꿔가며 빙글빙글 바람의 왈츠를 추고. 나는 찬 밤을 입에서 입으로 하얀 입김처럼 떠도는 허밍. 분명히 다 불렀는데 끝내 끝나지 않는 허밍. 나는 허밍으로 짜여진 새털방석에 앉아 간지러운 궁둥이를 들썩거리고, 고독의 긴 손가락으로 적막을 가르며 드럼을 단 한번 격렬하게 내려친다. 낙뢰가 구름을 치듯. 퐈아앙앙치이이익.

 

   확 타올랐던 불길 위로

   오늘도 다 잡쳤다는 분노의 붓질처럼 시커먼 폭우가

   내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짓뭉개듯 내리긋고 있다.

 

 

 

                             —《현대시》2011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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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일 / 1977년 서울 출생. 2002년 〈동아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국경꽃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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