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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읽기

[시]곰소항에서 / 이건청

작성자강인한|작성시간11.10.15|조회수480 목록 댓글 0

곰소항에서

 

   이건청

 

 

 

곰소 염전 곁 객사에 누워

하루를 잔다.

 

짠 바닷물은

마르고, 다시 마르며

결장지까지 와서

소금으로 가라앉는데,

 

이 마을 드럼통들 속에서는

새우와 바닷게들도

소금을 끌어안은 채

쓰린 꿈속에서

제 살을 삭혀

젓갈로 곰삭고 있을 것인데,

 

변산 바다 밀물의 때,

바다는 밀고 밀며

다시 곰소항으로 돌아오면서

흰 포말로 낯선 새들을 부르고,

산비탈 호랑가시나무 숲을 부르며,

젓갈 가게에 쌓인

드럼통들을 찾아와

드럼통 속 새우와 참게들에게

풍랑의 바다 소식을 전하면서

곰삭은 황혼도 조금씩,

밀어 넣어 주고 있구나,

아주 잊지는 않았다고

젓갈로 익더라도 서로 잊지는 말자고

밤새 속삭여주고 있구나

 

곰소 염전 곁 객사의 사람도

내소사 전나무 숲 위에 뜬

초롱초롱한 별도 몇 개

꿈속에 따 넣으며

쓰린 잠을 자는데,

소금을 끌어안고 잠자며

낯선 방에서 뒤척이는데

젓갈로 삭아가고 있는데……

 

 

 

                              —《현대시》2011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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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청 / 1942년 경기도 이천 출생. 197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박목월 추천). 시집 『이건청 시집』『목마른 자는 잠들고』『망초꽃 하나』『청동시대를 위하여』『하이에나』『코뿔소를 찾아서』『석탄형성에 관한 관찰 기록』『푸른 말들에 대한 기억』『소금창고에서 날아가는 노고지리』『반구대 암각화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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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소 / 이근일

 

 

 

   곰소엔 곰이 살지 않고, 소금을 이르는 은어(隱語)만 반짝인다 소금밭에 11월 대신, 6월의 빛살이 말갛게 일렁이고 네가 내 심장에 심어 놓은 글라디올러스가 더는 꽃을 피우지 않는다 이제 창공을 찢으며 날아가는 우리의 아름다운 노래를 들을 수 없으므로, 이 없으므로를 적시며 바닷물이 고요히 흘러들고 있다 너는 없고, 차오르고 또 차오르는 너의 음성만 있으므로, 나는 저 있으므로에 앉아 꿀차를 마신다 내 심장 속 달콤한 피의 교향곡이 울려 퍼지는 동안 너의 음성은 음성에서 멀어지고 바닷물은 바닷물에서 멀어져 짜디짠 시간이 된다 망중한 그 시간 위로 떠오른 한 척의 폐선이 다시금 밀회 속으로 가라앉는다 잠시 뒤 교향곡이 끊어지면 사방에 흩어진 내 핏방울이 곰소의 하늘가 천만 송이 글라디올러스를 활짝 피우고 글라디올러스가 글라디올러스에서 멀어지는 사이, 나는 나에게서 멀어지고 곰소는 그 반짝임에서 멀어져 오직 캄캄한 어둠만을 흡수하고

 

 

     (문장 웹진) 2009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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