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자나무카페
엄원태
유자는 얽어도 손님상에 오르고
탱자는 고와도 똥밭에 구른다는 옛말 있다지만
탱자나무는 제 처지 탓한 적 없을지니
그것만으로도 그 심성 족히 짐작 가리라
다만 햇빛을 좋아해서 저무는 석양 오래 기웃거리며
가만히 얼굴 붉히는 게 일과이고,
오전마다 계모임하는 참새들의 수다를 묵묵히 들어 주면서도
자릿값으론 기껏 햇살 몇 움큼 받는 게 전부라는데,
어쩌다 호랑나비 신사가 몸에 묻은 햇빛을 털어내며
어둑한 입구에 들어서기라도 하면
주인마담은 얼른 거울을 반짝이며 매무새를 고치곤 했다는데,
탱자나무카페에선 가시 굴헝 사이로 난 비밀통로와
허파꽈리 같은 밀실들이 하도 많지만
퇴폐업소 따위로 단속된 적은 한 번도 없다는데,
스크루지 굴뚝새할아범이 들락거리며 맡겨 놓은
금화들을 지키는 비밀금고 같은 곳이라고도 하는데,
어떤 이는 거길 지날 때마다
촛불 빛이 창밖으로 새 나오는 걸 보곤 했다는데
또 어떤 이는 익어가는 술 냄새가 제법 그윽하다고도 했다는데,
탱자나무카페엔 그 누구도 들어가 본 적 없는
밀실 중의 밀실이 하나 있으니,
그건 아마도 그대가 세상 바람 떠돌고 떠돌다 돌아오면
지친 몸 누이고 낡은 영혼 편히 쉬시라고
내가 마련해 둔 마음의 초옥(草屋) 같은 곳
수다쟁이 참새들은 감히 얼씬도 못 하는 곳이라네
—《현대시학》2011년 10월호
----------------
엄원태 / 1955년 대구 출생. 서울대농대와 서울대 환경대학원 졸업. 1990년 《문학과사회》로 등단. 시집 『침엽수림에서』『소읍에 대한 보고』『물방울 무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