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어 (외 1편)
권달웅
나 여기 떠나 태어난 곳으로 돌아간다면
청량산 굽이굽이 돌아나가는 맑은 물 되리
어머니 쪽진 비녀만한 은어가 되리
나 여기 떠나 자라난 곳으로 돌아간다면
달밤에 올 고운 안동포 짜는 어머니 바디소리 만나리
저 아득한 바다로 항해하는 수만 척의 배처럼
힘차게 물살을 가르며 거슬러 올라가
가슴에 품었던 반짝이는 물 만나리
꿈처럼 이슬 머금고 핀 들꽃 만나리
나 여기 떠나 저 투명한 낙동강으로 돌아간다면
원앙이 새끼쳐나가는 저 먼 비나리 지나
명경처럼 맑은 명호천까지 거슬러 올라가
강바닥 속 은모래처럼 환히 비치는 유년의 내 얼굴 들여다보리
은어처럼 내 몸에서 나는 수박향기 맡으리
—《현대시학》2012년 6월호
破寂
묘적사 뒤란 들마루에
살구나무 그늘이 내려왔다
바람에 하늘거리는 잎에
동자승이 앉아 놀고 있었다
가끔 노랗게 익은 살구가
들마루에 툭 하고 떨어졌다
살구가 떨어질 때마다
고요가 움찔움찔했다
앉아 놀던 동자승이
굴러가는 살구를 따라가다가
살구와 같이 지구 한 모퉁이로
툭 하고 떨어졌다
—《시안》2012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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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달웅 / 1944년 경북 봉화 출생. 1975년 《심상》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해바라기 환상』『사슴뿔』『바람부는 날』『지상의 한사람』『내 마음의 중심에 네가 있다』『크낙새를 찾습니다』『반딧불이 날다』『달빛 아래 잠들다』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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