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새의 그림자 (외 1편)
—새라는 심장
김중일
고양이는 발소리가 없다 왜일까? 고양이는 유연히 발생해서 은밀히 골목을 뒤덮는다
불시에 고개를 돌리니 검고 하얀 고양이 한 마리 담장 사이에 홀연 떠 있다 수상한 그림자처럼
담장 위의 고양이는 작고 검은 등을 잔뜩 웅크리고 탁란된 채 제 심장을 꺼내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고양이의 몸은 심장의 주인을 좇아 작은 게르처럼 떠돈다
고양이가 담장에서 담장으로 점프하는 순간, 허공에서 터키석 빛깔의 심장을 깨고, 아기 새가 젖은 날개 한쪽을 삐죽이 밖으로 내민다
밤의 공기는 여전히 형체가 없으나 분명한 몸짓으로 꿈틀대고 있다 고양이는 제 비린 혀로 무녀리를 핥는다
검고 하얀 고양이 한 마리 건너편 담장 위에서 사뿐히 내려앉았다 실제로 새와 고양이의 개체수는 세세연년 팽팽하게 당겨진 연줄처럼 균형을 이루어 왔다
자전의 원심력을 견디기 위해 새는 제 그림자인 고양이를 검은 추처럼 지상에 던져놓고, 고양이는 검은 연처럼 새를 하늘 멀리 띄워놓는다
허공이 온통 팽팽하다
오늘밤엔 평생 날리던 연을 거둔 얼레 하나가 지붕 위에 조등처럼 떨어져 있다
—시집『아무튼 씨 미안해요』
밀주
단 한 번 우리는 술잔을 부딪쳤고 비웠고 멀리 던져 깨버렸다. 여독 속에 내 무릎을 훔쳐 베고 잠든 너의 두 눈은 길고 아름다운 속눈썹에 덮여 있다. 꿈을 꾸고 있다는 건 꿈을 빌리고 있다는 것. 너의 감은 눈. 감은 눈은 달빛에 깊이 찔린 상처 같다. 너의 긴 속눈썹은 너라는 하얀 주머니를 급기야 꿰맨 자국이다. 감은 눈의 너. 지금 여기 내 무릎을 벤 너라는 주머니 속에는 나와 같은 부피의 죽음이 밀주(密酒)처럼 가득하다. 나는 누가 볼까봐 황급히 너의 눈을 두 손으로 꼭 틀어막았다. 내 손바닥의 수면 아래서 노오란 꿈들이 치어처럼 일렁이는 감은 눈으로 너는 우리가 기대앉은 나무를 보았다. 나무가 흔들리는 건 나무가 생각한다는 것이다. 바람이 부는 건 바람이 기억한다는 것이다. 습관적으로 옆을 돌아봤을 때 번번이 거기에 없는 것은 그냥 이제 없는 것이다. 내 무릎을 베던 너는 내 무릎을 베어 낡은 베개처럼 옆구리에 끼고 갔다. 잠의 노점상 같은 너의 침대로 더 깊은 잠을 빌리러 갔다. 너의 눈에 가만히 입술을 대고 너의 이름을 불렀다. 새파란 밀밭에서. 너는 혼자 비어가는 술병처럼 넘어졌다. 경전을 베듯 무릎을 베었다. 아그니에서 수리아까지 미트라에서 인드라까지 오랜 방문이었다. 밤하늘 멀리 우리를 메모해둔 휘파람들은 사라졌다. 밀밭의 까마귀 떼가 물고 갔다. 호주머니를 뒤집자 작은 돌멩이처럼 툭 떨어지던 불과 태양, 맹약과 용기 등의 낱말들. 그 잿빛 낱말들을 하나하나 가만히 올려보던 취한 입술도 함께.
—《문학사상》 2012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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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일 / 1977년 서울 출생. 2002년 〈동아일보〉신춘문예 당선. 시집 『국경꽃집』『아무튼 씨 미안해요』. ‘불편’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