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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읽기

[시]화조도(花鳥圖)/ 박남희

작성자강인한|작성시간12.11.25|조회수399 목록 댓글 0

화조도(花鳥圖)

 

   박남희

 

 

 

꽃은 날개 없이 날아다니는 새이고

새는 날개로 춤추는 꽃이다

네가 나를 사랑했다면 너는 새이고 꽃이다

 

꽃을 품은 새는 향기로 날아서 천년을 산다

내가 너를 생각할 때마다

길가에 핀 작은 꽃잎들이 흔들리고

그 위에 앉았던 새는

천년을 날아서 너에게로 간다

 

너는 나에게 새의 울음소리를 내는 꽃이다

내가 너에게 날개를 이야기 했을 때

너는 꽃으로 붉게 울었다

그 때 꽃대가 흔들리고 새가 날아왔다

 

나는 지금 꿈꾸듯 한 필의 붓으로 너에게 간다

나의 몸짓이 농담(濃淡)이 없어 백묘법으로 너를 말하고

때로는 윤곽을 보여주지 않는 몰골법으로 너를 그려도

붓의 뒤에 숨은 나의 말은 여전히 한 편의 화조도여서

잠시 새가 꽃을 떠나거나 꽃이 새를 버리는 일이

영원한 이별이 아님을 나는 안다

 

너를 그릴 때 너는 내게 영원한 날개이고 꽃이지만

네가 울 때 내 몸은 너와 함께 흔들려

네 윤곽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그럴 때 나는 너를 달래듯

구륵법으로 네 윤곽을 먼저 그린다

그리고 비로소 그 안에 너를 색칠할 수 있다

 

네가 꽃의 향기와 날개의 몸짓으로 내게 온 것을

한 편의 그림으로 어찌 다 말할 수 있으랴만

내가 붓이 되어 너를 꿈꿀 때 내 몸은 여전히 황홀한 춤이다

 

 

————

* 백묘법(白描法)은 동양화에서, 농담이 없이 먹의 선으로만 그림을 그리는 방법을 말하고, 몰골법(沒骨法)은 윤곽선을 그리지 않고 먹이나 채색으로 직접 그리는 기법을 말하며, 구륵법(鉤勒法)은 윤곽을 필선으로 먼저 그린 다음에 그 안을 색칠하는 화법을 말한다.

 

 

 

                        —《현대시학》2012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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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희 / 1956년 경기 고양 출생. 숭실대 국문과, 고려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 1996년 경인일보, 199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폐차장 근처』『이불 속의 쥐』『고장 난 아침』. 현재 고려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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