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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물랭루즈 물랭루즈 / 조현석

작성자강인한|작성시간13.04.14|조회수371 목록 댓글 0

물랭루즈 물랭루즈

 

   조현석

 

 

 

담배 얼룩 눅진한 벽에 걸린 액자 속 춤추는 그녀, 그 아래 테이블에는 술 마시는 여자, 바로 옆자리에는 땅이 꺼져라 한숨 쉬는 여자

그들 모두 자정에는 혼자라네

 

손님의 반은 술 마시며 떠들고 반은 춤을 추거나 무덤덤하였네

그 반의 반은 울상지었고 그 반의 반의 반은 목을 꺾었다네

악단 뒤에선가 흐느끼는 소리 뒤숭숭한 실내를 떠돌았다네

액자 속 퀭한 눈의 그녀 춤사위와 딱 맞아 떨어졌다네

짧은 한쪽 다리 끌고 들어온 그 사내와 또다시 뒤틀어졌다네

흐느적거리는 음률의 문장, 유령의 고독을 읽어내지 못했다네

 

지금은 천국과 지옥의 음악이 함께 멈추는 시각, 춤을 추었던 그녀와 술을 마시던 여자와 한숨을 쉬던 여자, 순간 정지된 시간과 공간이 뒤엉켜 한 폭의 유화油畵가 되어버리는,

 

그때가 자정, 그 시점에 가깝거나 넘어서거나 했었다네

음악을 희롱하다 굳어버린 실내는 천만 년 전의 빙하기였네

유빙遊氷처럼 떠도는 침묵, 깨었든 잠들었든 누구도 상관없다네

문을 나선 손님들은 불빛 없는 골목으로 휘청거리며 흩어졌네

얼어붙은 불구의 달빛이 절뚝거리며 뒤를 밟았다네

그날 자정은 질식의 달빛에 갇혀버린 적막이었다네

 

담배 얼룩 눅진한 벽에 걸린 액자 속 주저앉은 그녀, 그 아래 테이블에는 만취한 여자, 바로 옆자리에는 얼굴 전체가 눈물인 여자

그들 모두 자정이 지나도 혼자라네

 

 

 

                       —《시산맥》 2013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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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석 / 1963년 서울 출생. 1988년 〈경향신문〉신춘문예에 「에드바르트 뭉크의 꿈꾸는 겨울스케치」 당선. 〈중앙일보〉출판국, 〈경향신문〉편집국 근무. 시집 『에드바르트 뭉크의 꿈꾸는 겨울스케치』『불법, …체류자』『울다, 염소』등. 현재 도서출판 〈북인〉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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