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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물방울 알레그로 (외 2편)/ 신영배

작성자강인한|작성시간13.09.07|조회수460 목록 댓글 0

물방울 알레그로 (외 2편)

 

   신영배

 

 

 

집 안에서 여자는 식탁을 차린다 손끝에 물방울을 달고

 

물방울이 흔들린다 물로 어떤 것은 가능하고 어떤 것은 가능하지 않다 불안과 부끄러움이 손끝에 매달려 있다

 

집 안에 문이 몇 개 있나 세어본다

나가는 문과 들어오는 문, 개수가 같다

여자는 식탁을 걷어치우고 다시 식탁을 차린다

나가는 문만 다시 세어본다

 

여자가 가진 것은 집이 아닌 납작한 접시 하나

불안과 부끄러움이 간단히 놓이곤 한다

 

나가는 문만 다시 세어본다

물방울이 달린 손가락을 하나씩 곱혀본다

 

접시를 놓친다

바닥에 떨어져 흩어지는 조각들

공중에 떠올라 다시 둥근, 납작한,

 

눈가에

동그라미가 아른거리는 정오

 

손끝에 물방울을 달고 여자는 물구나무를 선다

나가는 문과 들어오는 문을 세어본다

나가는 문만 다시 세어본다

 

피아노를 열어본다

1과 2로 노래를 만들어본다

 

물병이 쓰러진다 젖은 다리로 바닥을 긴다

 

손으로 눈가를 훔친다 물방울들이 부푼다

 

물방울을 안고 몸을 둥글게 만다 바닥을 구른다

 

바다를 떠올려본다

3과 4로 노래를 불러본다

 

식탁을 걷어치우고 다시 식탁을

 

나가는 문만 다시

 

두드려본다

 

일렁이는

 

오후

 

손끝의 물방울들

 

 

 

피아노와 나

 

 

 

물속으로 들어가는 꿈

피아노

그리고 나

 

손가락을 하나 잃고

 

피아노 위에

떠 있는 나

 

발목의 끈을 풀고

 

피아노 앞에

 

두 귀가 없이

 

피아노와 나

 

 

 

물방울이 떨어지는 시간

 

 

 

팔과 다리가 부드럽게 늘어나는 너는

내 방을 돌아다니며 물을 준다

 

뒤꿈치를 들고

풀리지 않는 창가에 물을 준다

눕지 않는 책상에 물을 준다

쪼그리고 앉아

날지 않는 슬리퍼에 물을 준다

 

나는 잔잔히 떨리는 얼굴

 

너는 물로 태어난 팔과 다리, 어린 몸짓으로

 

길을 모르는 커튼에 물을 준다

각도를 모르는 유리병에 물을 준다

가라앉는 음악에, 납작해지는 베개에, 말라가는 벌레에도

나는 물방울이 맺히는 얼굴

 

물을 먹은 것들은 점점 부풀어 오른다

창가가 부풀어 오르고

구름이 들어오고

책상이 부풀어 오르고

둥둥 떠올라 잠을 자는 연인

 

팔과 다리가 늘어나는 웃음으로, 너는

부풀어 오른 것에 계속 물을 준다

 

두 귀에, 더듬이에,

 

노래하는 연인

 

햇살에, 백지 위에,

 

새가 날고 바다가 오고

 

나는 물방울이 떨어지는 얼굴

 

슬리퍼가 방향을 틀고

커튼이 출발하고

유리병이 주의를 기울이고

 

 

 

                        —시집『물속의 피아노』(2013)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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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배 / 1972년 충남 태안에서 태어났으며, 2001년 계간《포에지》에 「마른 피」외 4편의 시를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 시집 『기억이동장치』『오후 여섯 시에 나는 가장 길어진다』『물속의 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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