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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단추의 시 / 이기성

작성자강인한|작성시간14.01.10|조회수808 목록 댓글 0

단추의 시

 

     이기성

 

 

 

   겉옷의 단추가 달랑거렸다, 로 시작되는 하루가 있다

   그녀는 청소부가 되었다, 라고 쓰는 하루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고개를 숙이고 서로를 지나간다

 

   그녀와 내가 빈 복도에서 마주치는 것은 어떤 이야기의 시작일까

   말하자면 우리가 여고 동창이라는 사실, 이십 년 전에 조개탄 난로에 데운 도시락을 나눠먹었다는 사실, 훔친 지우개를 나눠가졌다는 비밀 혹은 그것이 하필 파란색의 톰보지우개였다는 사실

 

   복도에서 그녀가 속삭였다 밥 먹으러 올래? 파란 입술이 조개처럼 벌어지면 그것은 어떤 비밀의 탄생, 흔들리는 단추처럼 망설이는 사이, 그녀는 구정물이 든 물통을 들고 계단으로 사라졌다

 

   오래전 먹구름, 장미나무, 혁명이라는 단어를 볼펜으로 공책에 적어두었던 때가 있었다 그것은 어두운 계단 아래서 먹는 밥과 같은 것일까 지하실에 검은 여인들이 모여 있었다 문을 열자 그녀들이 일제히 돌아보았다 석고처럼 굳은 얼굴 흰 곰팡이 냄새가 피어올랐다

 

   차가운 계단과 계단 아래의 식사를 이해한다고, 그녀와 내가 마주치는 것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지만, 커다란 대걸레를 들고 그녀가 직업적으로 웃을 때 나는 분필을 뚝 부러뜨렸다 새하얀 분필로 녹색 칠판에 시를 쓸 수도 있었는데, 물론 내 목이 단추처럼 달랑거렸다, 로 시작되는 시를 쓸 수도 있었지만

 

 

 

                       —《현대시》2013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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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성 / 1966년 서울 출생. 1998년《문학과사회》로 등단. 시집『불쑥 내민 손』『타일의 모든 것』, 평론집 『우리, 유쾌한 사전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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