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좋은 시 읽기

[시]코스프레 / 김지명

작성자강인한|작성시간14.03.24|조회수516 목록 댓글 0

코스프레

 

   김지명

 

 

 

나보다 한참 깊은

스무 살이 찾아왔다

 

웃음의 잔근육이 더 필요한 눈 덮인 언덕으로

울음의 손가락이 더 필요한 구조요청으로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이 너무 많아 꽃을 버리고 새를 외면하고

곁에 있는 공 하나를 잡았다 스쿼시를 하듯 벽에 공을 치자

툴, 툴 공이 나를 거스른다

공처럼 구르고 튕겨나가고 방향 없는 헛손질에 감정이 사라질 때

두껍고 불안한 구름 사이 낙뢰를 숨긴, 당신 하나 보인다

 

굴을 판다 당신을 판다

사나운 구름이 찢어지며 뇌전의 즐거움에 빠지기 전에

빗방울이 먼저 참호의 지붕을 거두어가기 전에

숨겨진 병기의 지도를 열독하는 랠리

서로의 안부를 눈 밖으로 던지는 랠리

어쩌다 맛있는 열매 같은 랠리

 

당신의 속도와 기분까지 잰 내 샷은 마침내 飛거리

내 혈류를 타고 논 당신이 본 샷은 하지만 非거리

선전과 선방 사이

반감과 정감 사이

애매와 모호가 나를 키웠다

 

한 그늘에 너무 오래 있어 내 그림자 형체가 없는 걸 몰랐다

그래도 내가 열망한 당신이 나를 열망하지 않아 다행이다

 

면류관을 쓴 이름 모를 새들이 날아다니는 창밖

내 스무 살이 접혀진 불편한 정의를 펼쳐든다

 

 

 

                       —《애지》2014년 봄호

-------------

김지명 / 1960년 서울 출생. 2013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