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의 초상 (외 2편)
김행숙
입술들의 물결, 어떤 입술은 높고 어떤 입술은 낮아서 안개 속의 도시 같고, 어떤 가슴은 크고 어떤 가슴은 작아서 멍하니 바라보는 창밖의 풍경 같고, 끝 모를 장례행렬, 어떤 눈동자는 진흙처럼 어둡고 어떤 눈동자는 촛불처럼 붉어서 노을에 젖은 회색 구름의 띠 같고, 어떤 손짓은 멀리 떠나보내느라 흔들리고 어떤 손짓은 어서 돌아오라고 흔들려서 검은 새떼들이 저물녘 허공에 펼치는 어지러운 군무 같고, 어떤 얼굴은 처음 보는 것 같고 어떤 얼굴은 꿈에서 보는 것 같고 어떤 얼굴은 영원히 보게 될 것 같아서 너의 마지막 얼굴 같고, 아, 하고 입을 벌리면 아, 하고 입을 벌리는 것 같아서 살아 있는 얼굴 같고,
밤의 고속도로
바퀴 달린 것들이 소리를 지를 때
창문을 흔들며
무엇을 운반하는가
고속도로는 검은 채찍같다
채찍 속으로 말려들어가는 빛, 빛,
빛의 그림자들처럼
세계의 난간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누군가 난간처럼 서 있었다
그것은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소리의 악마
그것은 유리창이라면 끌로 바깥세계를 긁는 것,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지나간다. 쥐와 고양이라면 꼬리에 불이 붙은 것, 뜨거운 꼬리로부터 시작되는
그것은 너의 목구멍을 타고 올라온다. 목은 죽음의 화환을 걸기에 적합한 형상, 목구멍은 늘 죽음의 근처를 떠돌았다. 그러므로 목을 통로로 삼는다는 것, 그것은 여러 번 죽고 여러 번 살아나는 것, 너는 너에게 놀라고
나는 나에게 놀라고, 그것은 거울이라면 깨지는 것, 깨진 거울이라면 다시 깨지는 것, 너는 네가 아니다.
나는 내가 아니다. 그것은 부정하는 것, 부정하고 부정하는 것, 스스로 멈출 줄 모르는 기계,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지나가고 지나가지 않는다.
—시집『에코의 초상』(2014)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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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행숙 / 1970년 서울 출생. 고려대 국어교육과 및 같은 대학원 국문과 졸업. 1999년《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사춘기』『이별의 능력』『타인의 의미』. 현재 강남대학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