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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읽기

[시]공룡 인형/ 황유원

작성자강인한|작성시간15.08.16|조회수760 목록 댓글 0

공룡 인형

 

   황유원

 

 

 

마당은 공룡 인형들로 무너질 듯하다

한때 지구의 주인이었던 것들이

이제 작은 고무 인형이 된 채 마당을 걸어다니다 이렇게 문득

정지해 있는 것이다

누가 정지 버튼이라도 누른 듯

더 이상 잡아먹지도

으르렁거리지도 못하고

마당에 늘어져 있는 공룡들

가끔 누가 와서 가지고 논다

그들에게 목소리와 동작을 부여하는

아이의 고사리 같은 손과 음성

공룡의 상상력에 대해서라면 생각해본 적 없지만

아마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자신들이 작고 말랑말랑한 고무 인형이 되어

아이의 몸 빌어 움직이게 될 날이 올 줄은

아니 어쩌면 알고 있었을까

마당에 저녁이 오고

지겨워진 아이가 공룡들 내팽개친 채 자릴 떠나면

그들은 쓰러진 채 고요하고

다시 일어설 줄을 모른다

같은 어둠이지만

한때는 이불처럼 덮고 자던 어둠이

이제는 모든 움직임을 잃은 인형들을 덮어주기 위해 천천히

마당 위로 깔릴 때

아이는 조금 늙어 있고

바람 한 번 불자

중생대부터 있어 온 은행나무 잎 마당에 떨어진다

은행나무는 자신이 은행나무 인형이 되는 꼴을 보게 될 날은

아마 없을 거라고 확신하는 듯하고

마당은 이 온갖 것들로 인해 잠시

폐허가 되어본다

누가 와 재생 버튼이라도 누르고 간 듯

폐허가 되어 흘러갔고

오래전이라고도

오랜 후라고도 말할 수 없었다

 

 

 

                       —《포지션》2015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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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유원 / 1982년 경남 울산 출생. 2013년 가을호《문학동네》신인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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