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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의 투쟁 / 이현호

작성자강인한|작성시간16.05.23|조회수990 목록 댓글 0

나의 투쟁

 

   이현호

 

 

 

머리카락을 기른다. 머리가 자라는 만큼

세계에 더 참여하는 기분

매일 0.3mm씩 세상을 뒤덮는 십 수만의 첨단은

고통을 모르는, 나의 자랑

 

머리카락에는 핏줄이 없습니다

마음껏 색을 입힐 수 있습니다

세우고 눕히고 구부릴 수 있습니다

 

머리카락을 기른다. 아주 작은 숟가락을 세상에 얹는 느낌으로

멀거니 눈동자를 굴리며 누워 있는 사이에도

아무 느낌에서나 머리는 잘 자라는구나

구석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무는 것처럼

 

머리카락에는 인격이 없습니다

멍청한 머리라도 붙어만 있으면 잘 자랍니다

가야 할 때를 아는 미덕과 함께

 

머리를 기른다. 머리카락이 길어질수록

지구를 더 검게 물들이는 기분

온화한 테러, 은밀한 쿠데타, 나의 정규직

관 속에서는 나보다 더 키가 크겠지

 

방바닥의 머리털을 비질합니다

삶은 나약함을 용서하지 않습니다*

자꾸 눈을 가리는 머리를 쓸어 올립니다

 

머리는 기른다. 머리는 나를 기르고

머리카락에서 나는 잘 자라고 있다

잘하고 있다

 

 

————

* 삶은 나약함을 용서하지 않는다: 아돌프 히틀러

 

 

                        —《무크 파란》2015년, 창간호

--------------

이현호 / 1983년 충남 전의 출생. 2007년 《현대시》신인상으로 등단. 시집『라이터 좀 빌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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