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불어 너도나도바람꽃
이원규
밤의 휘파람을 부니 밤바람이 분다
간절히 바라니 봄바람이 불어온다
파풍(破風)의 대숲에 깃들어 성난 깃털을 쓰다듬더니
수다쟁이 봄바람이 창문을 두드린다
오래 잊었던 눈짓 손짓들의 살가운 부채질
그날 밤 돌담 살구나무 아래 꼴깍 침 넘어가던 소리
하릴없이 손가락 관절을 꺾던 소리
캄캄해도 부끄러워 눈썹까지 이불을 끌어올리던
신열의 달뜬 너도바람꽃
삼십 년 전의 봄바람이 불어온다
입술 닿은 자리마다 후끈 열꽃이 피어난다
지천명을 넘어서야 속살 깊이 되새기는
변산바람 풍도바람 너도바람 나도바람
만주바람 꿩의바람 홀아비바람 조선남바람
회리바람 태백바람 세바람 들바람
하많은 내 생의 바람꽃들에게
그래, 나쁜 놈이야, 나는, 두 무릎을 꿇는다
간절히 바라니 다시 봄바람이 분다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의 자작나무
그 숲속에서 불던 흙피리 소리 이제야 당도한다
저 바람이 데려오다 흘린 낙엽 하나
오늘밤은 또 어디에서 잠드는지
흰 목덜미를 돌아온 옛 바람들에게
이미 푹 젖은 낙엽의 혀로 안부를 묻는다
네가 바라니 나도 바라는 너도나도바람꽃
죽을 때까지 제발, 죽지 마
애타게 밤의 휘파람을 부니 봄바람이 불어온다
—《시와 경계》2016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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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규 / 1962년 경북 문경 출생. 계명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1984년 《월간문학》과 1989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 『빨치산 편지』『지푸라기로 다가와 어느덧 섬이 된 그대에게』『돌아보면 그가 있다』『옛 애인의 집』『강물도 목이 마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