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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읽기

[시]꼴림에 대하여 (외 2편) / 함순례

작성자강인한|작성시간07.05.03|조회수403 목록 댓글 0
꼴림에 대하여

함순례




개구리 울음소리 와글와글 여름밤을 끌고 간다
한 번 하고 싶어 저리 야단들인데
푸른 기운 쌓이는 들녘에 점점 붉은 등불 켜진다

내가 꼴린다는 말 할 때마다
사내들은 가시내가 참, 혀를 찬다
꼴림은 떨림이고 싹이 튼다는 것
무언가 하고 싶어진다는 것
빈 하늘에 기러기를 날려보내는 일
마음속 냉기 당당하게 풀면서
한 발 내딛는 것

개구리 울음소리 저릿저릿 메마른 마음 훑고 간다
물오른 아카시아 꽃잎들
붉은 달빛 안으로 가득 들어앉는다

꼴린다, 화르르 풍요로워지는 초여름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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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을 기다렸다




산허리에 구름이 몰려 있다
알 수 없지만
내가 가고 있으니 구름이 오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빗속에서 바라보는 구름은
고등어처럼 푸릇했으나 파닥거리지는 않는다
추녀에 매달려 울던 빗방울들이
호흡을 가다듬는 저녁 다섯 시
점점 켜지는 불빛들 바라보며 묘하게
마음 편안하다
사랑을 믿지 않는다,는 어느 시인의 말에
방점을 찍는다 그 옆에 사랑은 세숫비누 같아서
닳고 닳아지면 뭉치고 뭉쳐
빨래비누로 쓰는 것이다,라고 적어놓는다
저 구름을 인생이라 치면
죽지 않고 반을 건너왔으니
열길 사람 속으로 흘러들 수 있겠다,고 쓴다
마흔, 잘 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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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편지를 읽습니다 당신에게로 갔다가 우리 속에 놓여진 편지 당신을 만나
즐겁다, 쓰여있군요 행복해요, 라고도요

가까이 있으면 자랄 수 없다는 듯 간격을 두고 발끝 세운 나무들처럼 큰 바람이
일렁일 때나 사르락 손 내미는 이파리처럼 멀어졌다가 가까워졌다가

곁눈질로 골똘했지요 이따금 새들에게 눈 맞추는건 헛김나는 일이어서 나는 그만
아득해져 혼자 말갛게 익어가는 산감이 되었더랬지요

그런데 묘목을 심은 첫 자리 뱀처럼 얽혀 있는 우리의 뿌리를 만납니다 나의 밑둥
썩은 감꼭지 핥고 있는 이가 바람이려니 했더니 당신이었군요

벌거숭이 산길에 가위눌리는 일도 끝이지 싶네, 내게로 온, 오늘 문득 층층이 허물
벗은 골짜기 따라 우거진 숲을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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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순례 1966년 충북 보은 출생. 1993년 《시와사회》 신인상으로 등단.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 《작가마당》 편집위원, '애지시선' 기획위원. 시집 『뜨거운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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