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는 도마 위에서(외 2편)
김승희
도미가 도마 위에 올랐네
도미는 도마 위에서
에이, 인생, 다 그런 거지 뭐,
건들거리고 산 적도 있었지
삭발한 달이 파아랗게 내려다보고 있는 도마 위
도미
물방울이빨랫줄에조롱조롱
도미는 도마 위에서 맵시를 꾸며보려고 하지만
종말에 참고문헌과 각주가 소용이 될까?
비늘을 벗기고 보면 다 피 배인 연분홍 살결
그래도
고종명에 참고문헌과 각주가 소용이 되느니
물방울이빨랫줄에조롱조롱
도미가 도마 위에서
도미가 도마 위에서
몸서리치는 눈부신 몸부림
부질없는 꼬리로
도마를 한번 탕 치고 맥없이 떨어져
보랏빛 향 그윽한 산천
꽃들의 제사
어떤 그리움이 저 달리아 같은 붉은 꽃물결을 피게 하는가
어떤 그리움이 혈관 속에 저 푸른 파도를 울게 하는가
어떤 그리움이 흘러가는 강물 위에 저 반짝이는 햇빛을 펄떡이게 하는가
어떤 그리움이 끊어진 손톱과 끊어진 손톱을 이어놓는가
어떤 그리움이 시카다(cicada)에게 17년 동안의 지하 생활을 허하는가
어떤 그리움이 시카다에게 한여름 대낮의 절명가를 허하는가
어떤 그리움이 저 비행운과 비행운을 맺어주나
지금 파란 하늘을 보는 이 심장은 뛰고 있다
불타는 심장은 꽃들의 제사다
이 심장에는 지금 유황의 온천수 같은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는데
애도 시계
애도의 시계는 시계 방향으로 돌지 않는다
시계 방향으로 돌다가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다가 자기 맘대로 돌아간다
애도의 시계에 시간은 없다
콩가루도 기도를 할까
콩가루가 기도를 할 수 있을까
콩가루가 기도를 한다면
어떤 기도를 할까
콩가루는 자기를 복원해달라고 기도를 할까
콩가루가 복원될 수 있을까
콩가루에게 어떤 기도가 가능할까
애도의 시계는 그런 기도를 한다
가루가루 빻아져 콩가루들은 날아갔는데
콩가루는 콩가루의 소식을 모르고
콩가루는 콩가루의 주소를 모르고
콩가루는 향수를 모르고
콩가루는 다만 바람 속의 근심으로 바람의 애도를 한다
회오리를 타고 시시때때
애도의 시계는 꿈에서 거꾸로 나온다
—시집『도미는 도마 위에서』(2017. 6)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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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희 / 1952년 光州 출생. 1973년 〈경향신문〉신춘문예 시 당선. 1994년 〈동아일보〉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소설집 『산타페로 가는 사람』, 시집 『태양 미사』『왼손을 위한 협주곡』『미완성을 위한 연가』『달걀 속의 생』『어떻게 밖으로 나갈까』『냄비는 둥둥』『희망이 외롭다』등. 현재 서강대학교 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