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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읽기

[시]멀어지는 포도 / 이혜미

작성자강인한|작성시간17.10.01|조회수904 목록 댓글 0

멀어지는 포도

 

  이혜미

 

 

 

리코더를 불 때 왜 눈을 감을까

 

눈도 구멍이니까

 

우리는 어쩐지 기다리거나 사라지고 싶어서

수없이 많은 손가락들을 꺼내놓는다

 

서로의 구멍을 틀어막으며

한 뼘 더 다정해지고 싶어서

 

모아진 눈으로

오므린 입술로

 

왜 키스할 때 눈을 감을까

연주되는 중이니까

 

몸속에 숨을 초대하여

새어나가는 음악이 되어주려고

 

속으로 맺혀가는

물방울들, 가지마다 매달리는

흐린 기포들

 

어둠과 빛 사이

눈을 감으면 시들어 떨어지는

숨방울

 

멀어지는 중이니까

음악으로부터, 넝쿨을 뻗는 혀들로부터

 

부풀어오르다 펼쳐지는

어두운 열매들

 

 

 

                       —《모:든 시》2017년 가을호

--------------

이혜미 / 1988년 안양 출생. 건국대 국어국문학과와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06년〈중앙일보〉신인문학상 당선. 시집『보라의 바깥』『뜻밖의 바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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