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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봄이 달력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이은규

작성자강인한|작성시간17.10.18|조회수1,025 목록 댓글 0

봄이 달력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이은규

 

 

 

꽃봄을 줄게, 봄꽃을 다오

중얼거리는 사이 저만치 기억이 오다

 

경고에 가깝거나

안내보다 먼 문장들에 오래 머뭇거리는

 

꽃잎 한 점 떨어져도

봄빛은 줄어든다고 말한 목소리는 이제 없다

투명하게 웃는 얼굴들이 희미해지는 동안

안 보이는 발자국을 따라 길을 나서면

 

순간은 얼마나 긴 영원일까

끝나는 듯 시작되는 길 위, 우두커니

무심코 지나친 풍경이거나 놓쳐버린 시간

 

저기 어떻게 흩날려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고요하게 흩날리고 있는 점점의 벚꽃들이

사이드 미러 풍경 안에 고여있다

그 시간 속에 씌여 있는 한 줄 문장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기억은 언제나 우리를 앞지르며 도착해있다

봄이 달력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모든 봄은 지난봄을 간직한 채 피어오르고

 

가만히 있으라, 가만히 있지 말라

 

경고에 가깝거나

안내보다 먼 문장들에 머뭇거리지 않기 위해

이제 우리는 지난 사건을 발견하며

그 사건으로부터 뒤돌아보면서 나아가야 한다

 

그러니 봄꽃을 줄게, 꽃봄을 다오

저만치 기억이 오다 선언하는 사이

 

 

 

                       —계간 시 전문지《발견》2017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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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규 / 1978년 서울 출생. 2008년 〈동아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다정한 호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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