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잡이는 태연하다
황수아
얼마나 많은 망설임이
머물다 돌아갔을까.
하지만 손잡이는 태연하다.
인적의 그늘이 지문처럼 찍힌
손잡이의 언덕
어두운 곳에서도 더 어두운 곳으로 길을 내는,
손잡이의 저녁만큼 쓸쓸한 배경이 있을까.
많은 사람이 다녀갔다.
몹시 신중해 끝내 결단을 유예시킨 사람도
바람에 창을 맡기고 언덕을 내달리는 중세 기사처럼
성급하게 용기 낸 사람도 있었으리라.
그러므로 문은 오래도록 닫혀 있다가도
수일간 열려 있었다.
이 마음들의 길 끝이
열리거나 닫히거나 하나의 정답만을 남겨둔다는 것,
이 사실을 알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는가.
오랜 경험으로 마음이 너덜거리듯
손잡이의 나사가 헐겁다.
오늘도 손잡이를 잡아보지만
손잡이는 태연하다.
—격월간《시사사》2017년 9-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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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아 / 1980년 서울 출생.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같은 대학원 졸업. 2008년 <문학수첩> 으로 시 등단. 시집『뢴트겐행 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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