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랑콜리커의 발
정끝별
가만한 발에 검정 바다가 왔다
그만이라는 발바닥에 가장 검정 바위가 알을 슬었다
작은 뭉게구름은 백 톤에서 천 톤의 무게다 사십 마리에서 사백 마리의 코끼리가 하늘에 떠 있다는 거다
그러니 구름은 가벼워서 뜨는 게 아니다 구름보다 더 무거운 바람이 구름 아래를 침범했기에 뜨는 거다
처음엔 다음 바다를 믿었으나 소음된 믿음이 바람을 불렀다 검정 구름이 폭음처럼 더 높이 솟구쳤다
별이라도 있었으면 그렇게 금세 쏟아지지 않았을 텐데
뭐든 가만 참다 보면 줄이 풀리고 발을 적시는 건 순간
발이 젖었으니 넘칠밖에 쏟아질밖에
발도 없이 달려오는 검정 바람에 소문의 파고가 높았다
미상과 불명의 침몰일수록 오래 유출되는 법
매미처럼 울었다 같은 곳에서 멈춰 같은 곳을 노래하다 같은 곳에서 길을 잃고 같은 곳으로 쏠렸다 개미처럼 사소해졌다
발이 없으니 번개가 날개였고 안개가 베개였다
물었던 걸 또 묻는다 되묻는 간격이 점점 짧아진다 물을 때마다 다른 인생에 가까워진다 묻고 묻다 보면 신생아가 될 것 같다 검정 바다에 가까워질 것이다
천 날의 발이 젖었으니 천 날의 발을 잃었으니
오늘도 사이렌과 세이런으로 떠가는 중이다
오늘도 검정이라는 사어를 인양 중이다
⸻계간 《문학들》 2018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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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끝별 / 1964년 전남 나주 출생. 1988년 《문학사상》(시), 1994년 〈동아일보〉신춘문예(평론)로 등단. 시집『자작나무 내 인생』『흰 책』『삼천갑자 복사빛』『와락』『은는이가』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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