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영역
조용미
여긴 아주 환한 어둠이다
조금 다른 곳으로 가 볼까
천천히
휘익
명왕성 탐사선 뉴호라이즌스호처럼 나도 9년 6개월을 날아서 걸어서 그곳으로 갈 수 있다면 수차례의 동면 과정을 거쳐 자다 깨다 하며 어둠이라는 심연에 다다를 수 있다면
당신은 명왕성보다 멀어야 하지 조금 더 멀어야 하지
누구도 당신의 아름다움을 훼손할 수 없다
아름다움의 영역에 별보다
죽은 자들이 더 많으면 곤란하다
빈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는 까마귀들, 어둠 속 저수지 근처 폐사지의 삼층석탑, 차창으로 얼핏 보았던 과일을 감싸고 있는 누런 종이들이 내뿜는 신비한 기운
이런 것들에 왜 잔혹한 아름다움을 느끼며 몸서리쳐야 하는지 슬픔이 왜 이토록 오래 나의 몸에 깃들어야 하는지 당신은 알고 있을 것만 같다
당신은 명왕성보다 멀어서 아름답고
나는 당신을 만날 수 없다
당신과 내가 이 영역에 함께 있다
⸻계간 《문학들》 2018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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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미 / 1962년 경북 고령 출생. 1990년《한길문학》으로 등단. 시집『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일만 마리 물고기가 山을 날아오르다』『삼베옷을 입은 자화상』『나의 별서에 핀 앵두나무는』『기억의 행성』『나의 다른 이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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