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관측소
한연희
침을 묻힌 손가락을 들어 내일의 날씨를 예측했습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건 나만의 방식이었습니다
천사는 한 번도 나를 아낀 적 없습니다
폭설이 시작되면 빙하기가 올 거라구요
구름이 모여드는 걸 봤습니다
광측 이래 최대의 우박을 기다리는 군중들
내내 하늘이 무너질 순간을 기다렸어요
천사나 악마가 곧 나를 위해 벌을 내려줄 테니까요
용서를 구하지 않겠습니다
어서 멸망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두 손을 모았습니다
나는 여태껏 다락방이나 화장실에 숨어 있기를 좋아했습니다
자해를 하였습니다
자위를 하였습니다
쾌락을 맛보지 못하였습니다
눈송이 같은 벌레들이 혀에 닿으면 온통 끈적거렸죠?
아니면 번개에 맞은 나무들이 불타오르면 아름답겠죠?
조만간 여진이 시작된다면 우리는 낭떠러지를 맛볼 수 있을 거예요
기대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선생이 출석부를 들고 이름을 불렀었는데
영철, 지은, 우주, 하진, 미래, 보영……
나만 호명되지 않았습니다
천사가 여전히 나를 호명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호명된 아이들은 제각각 맘에 드는 색을 골라 부수기 시작했고
거대한 멸망의 지도를 만들었습니다
나는 보기만 했습니다
우박은 끝내 오지 않았습니다
라디오에선 늘 날씨가 틀려요
그러니 내가 예측하는 것들을 기록해야겠습니다
내일 아침이면 모두는 악마의 손을 놓을 것입니다
모두들 갈라진 땅 아래로 와르르르 무너져 내릴 것입니다
마지막까지 나는 꼭꼭 닫은 화장실에서 기록물을 잘 지키겠습니다
⸺계간 《포지션》 2018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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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연희 / 1979년 경기 광명 출생. 2016년《창작과비평》신인시인상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