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의 힘
이영춘
나는 수면 속에 물고기처럼 잠겨서
나를 건져 올리지 못하네
빗방울 속으로 흐르는 여린 풀잎들이
슬픈 레퀴엠의 악보처럼 뛰어오르네
요만큼만 차오른 물결처럼
내가 허공 속으로 자꾸 점프를 해도
내 그릇은 요만한 크기의 빈 공기
내 창밖에서 유리창을 두드리며 달려가는
빗방울 소리, 소리의 발자국들
아득한 저 강 하구를 안고 도는 물안개와
산그늘을 덮고 있는 구름의 입자들
그 입자들의 수런거리는 숨소리만큼
내 호흡이 머물고 있는 이 지상
내 작은 님프가 살고 있는 이 영토
나는 물고기처럼 수면에 가라앉아서
나를 건져 올릴 수가 없네
⸺계간《시산맥》 2018년 가을호
------------
이영춘 / 1941년 강원도 평창군 봉평 출생. 1976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 『꽃 속에는 신의 속눈썹이 보인다』『슬픈 도시락』『봉평 장날』『노자의 무덤을 가다』『신들의 발자국을 따라』외.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