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술가
/ 박성우
비가 오거나 비가 오지 않거나 그녀는
화투로 하루를 점친다 말하자면 그녀는
도구를 사용하는 주술가인 셈이다
그녀의 몸 여기저기엔
빙하가 녹아내린 흔적이 있다
불의 사용이 다른 사람보다 빨랐을 것으로 추정된다
감당할 수 없는 뜨거운 사랑이 잘못 흘렀으리라
그녀는 우리와 같은 북방계 퉁구스족의 한 갈래이지만
사람들은 가끔 그녀를 이방인처럼 대하기도 한다
그녀가 젊었을 땐
무리지어 돌아다니는 이동생활을 했다
처음엔 서울 근교 안에서 이동했지만
차차 지방 소도시를 거쳐 면 단위에 이르렀다
그녀가 주술적 행위를 시작하게 된 건
의식주를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그녀가 정착생활에 들어간 건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식량을 생산하고 저장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지만
박물관에 전시된 토기들이 비어 있듯
그녀가 소유한 몇 개의 통장은 대부분 비어 있다
그녀는 유물을 남기지 않을 작정이다 말하자면 그녀는
마음을 비운 주술가인 셈이다
- 박성우,『거미』(창작과비평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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