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올 때
/ 고영민
저녁 어스름 뒷산에 올랐다가
산뽕나무를 만났네
오글오글 검은 열매를 달고 있는 산뽕나무를 만났네
나는 산뽕나무에게 다가가
딸아이에게 주려 한 손 열매를 얻어오고
오는 동안 손바닥이 짙푸르게 물들고
살포시 쥔 마음이 물들고
딸아이는 나에게 묻겠지
아빠, 이게 뭐예요?
오디란다
오디?
그래 먹어봐, 먹어봐
붉던 입술은 검어져
우린 서로 손가락질하며 깔깔 웃겠지
혓바닥을 길게 빼
몰래 거울을 한번씩 보겠지
자꾸만 나 몰래 걸음은 빨라지고
어느새 딸아이의 배 속도 내 몸도
막 익은
검은 산뽕나무 열매의 물이
다 들어버리고
- 고영민,『사슴공원에서』(창비, 2012)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