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그림자 속
/ 허수경
아마도 내가 당신을 잊어버린 것 같다, 그렇지 않고야 잠 속에 든 당신 옆에 내가 누워 있겠는가, 이제 당신을 나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여기는 그림 속, 손을 잃어버린 새들이 날고 있다. 검은 부리를 가진 물고기들이 하늘을 향해
늙은 개들을 실어 나르고 있다. 개들은 머리만 있고 얼굴은 없다. 지난 오후에 마을을 폭격한 거미 같다. 전갈도 어쩌면 잠자리처럼 부드러운 곡선으로 세계를 배회할지도 모르겠다.
여기는 그림 속, 대나무 숲이 교회 옆에 있는 그림 속이다. 식당에서 내주는 작은 철근 한쪽을 씹어 먹는다. 가끔 내 주위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지렁이를 밟으며 옷가게로 들어간다. 나무를 팔고 있는 옷 가게는 바다이다.
여기는 그림 속, 그 바다 안에서 우렁거리는 핵 발전소에서 빛으로 엮은 목도리를 하나 사 들고 다시 교회로 간다. 교회 옆에 있던 대나무 숲이여, 어쩌면 당신은 옛 당신의 음성을 그렇게 잘 흉내 내는가.
아마도 내가 당신을 잊어버린 거겠지, 그렇지 않고야 이렇게 잠 속에 든 태양 안에서 돗자리를 깔고 누워 타는 줄도 모르고 어느 가운데를 건너겠는가, 이제 당신을 나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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