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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안경 / 박규리

작성자루우|작성시간26.06.15|조회수6 목록 댓글 0

 

잃어버린 안경

 / 박규리

지리산 계곡에서 발을 헛디뎌 떨어졌다

오래 쓰던 안경을 그때 잃어버렸다

새벽부터 계곡을 뒤졌다

휩쓸리는 물살에 안경은 찾을 길 없다

언제나 손에 닿을 듯,

나는 안경 너머로만 세상을 봤다

밝디밝은 빛에 속아

꿈 같은 모래사막을 넘고 또 넘었던가

안경이 흘러갔을 저 아래 계곡을 내려다봤다

얼마나 더 깊이 떨어져야

미련 없이 이 가슴에 쩡쩡 금이 갈까

얼마나 더 많은 밤을 욱신거려야

내 안의 무수한 안경들이

우수수 떨어질까 깨어질까

뿌연 눈을 들어 세상을 본다

금 간 갈비뼈는 몇 달 후면 낫겠지만

나는 아직 산기슭에서

무슨 마음의 밝은 눈, 더듬거리며 찾고 있는가

 

여기서 머물 때가 아니라고

와락 덮치는 아지랑이 눈앞, 아지랑이떼……

- 박규리,『이 환장할 봄날에』(창비,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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