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안경
/ 박규리
지리산 계곡에서 발을 헛디뎌 떨어졌다
오래 쓰던 안경을 그때 잃어버렸다
새벽부터 계곡을 뒤졌다
휩쓸리는 물살에 안경은 찾을 길 없다
언제나 손에 닿을 듯,
나는 안경 너머로만 세상을 봤다
밝디밝은 빛에 속아
꿈 같은 모래사막을 넘고 또 넘었던가
안경이 흘러갔을 저 아래 계곡을 내려다봤다
얼마나 더 깊이 떨어져야
미련 없이 이 가슴에 쩡쩡 금이 갈까
얼마나 더 많은 밤을 욱신거려야
내 안의 무수한 안경들이
우수수 떨어질까 깨어질까
뿌연 눈을 들어 세상을 본다
금 간 갈비뼈는 몇 달 후면 낫겠지만
나는 아직 산기슭에서
무슨 마음의 밝은 눈, 더듬거리며 찾고 있는가
여기서 머물 때가 아니라고
와락 덮치는 아지랑이 눈앞, 아지랑이떼……
- 박규리,『이 환장할 봄날에』(창비,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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